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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눈물 Morgan Rice 마법사의 링 #4 음모, 대항책, 미스터리, 용맹한 기사들, 실연의 아픔이 가득한 사랑의 결실, 기만, 배신 등 마법사의 링은 즉각적인 흥행요소를 고루 갖춘 소설이다. 읽는 내내 즐거움이 가득하고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매료된다. 판타지 소설 애독자라면 영구 소장도서로 추천한다. 도서 및 영화 평론, 로버트 메토스‘명예의 눈물(마법사의 링 제4권) ’ 속에서, 백일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토르는 이제 고국을 위해 싸운다는 것이 무언인지를, 생사를 오가는 전쟁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 링 대륙의 역사상 유례없이 맥클라우드 왕가는 맥길 왕가의 매우 깊숙한 영토까지 침투한다. 그리고 매복에 빠진 토르는, 급습을 피하고 왕실을 구해야 하는 운명을 마주한다. 개리스 왕의 계략에 빠져 매우 희귀하고 강력한 독에 중독된 고드프리 왕자의 생사는 그웬돌린 공주의 손에 달려있다. 공주는 고드프리 왕자를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한다. 개리스 왕의 피해망상과 적개심은 더욱 심화되어, 야만 부족을 개인 경호단으로 고용하며 그들에게 실버 훈장까지 수여한다. 이를 통해 실버 전사들은 자극을 받아 왕실 내 균열이 발생하고 이는 내전의 발단이 될지도 모르는 큰 위협으로 남는다. 개리스 왕은 또한 잔인한 네바런스 족에게 그웬돌린 공주를 보낼 계획을 세운다. 공주의 승낙 없이 반인 반수인 네바런스 족과 공주와의 결혼을 승인한다. 토르는 부대원들과 새로운 장소로 떠나 그들과 함께 무자비한 전쟁에서 예상치도 못한 괴물들을 대면하며 더욱 깊은 우정을 쌓는다. 자신의 고향까지 내려간 토르는 아버지와의 대대적인 대치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의 운명이 무엇인지에 관련한 과거의 비밀을 밝히게 된다. 아르곤에게서 고난도의 훈련을 받은 토르는, 자신이 알지도 못했던 힘을 발휘하며 날이 갈수록 더욱 강력하게 거듭난다. 공주와의 관계가 깊어진 토르는 공주에게 청혼을 꿈꾸며 왕실로 돌아오지만, 어쩌면 때가 너무 늦었을 지도 모른다. 안드로니쿠스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수백만 명의 야만 생명체 군단을 이끌고 다시 한번 캐니언 협곡의 에너지 장벽을 뚫고 링 대륙을 짓밟기 위한 시도를 한다. 더 이상 망가질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악화된 왕국의 사태 속에서, 이야기의 마지막은 충격적인 반전을 맞으며 마무리된다. 고드프리 왕자는 살아날 수 있을까? 개리스 왕은 폐위될까? 왕국은 두 개로 분리될까? 와일즈 제국은 침략에 성공할까? 그웬돌린 공주는 토르와 함께할 수 있을까? 그리고 토르는 마침내 자신의 비밀스런 운명을 깨닫게 될까? ‘명예의 눈물’은 정교하게 설정된 배경과 등장인물을 축으로 우정과 사랑, 경쟁자와 구혼자, 전사와 용, 음모와 정치적 권모술수, 성장, 실연, 기만, 야망 그리고 배신을 다루는 장편 서사소설이며 명예와 용기, 숙명과 운명, 마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왕들의 행군’은 연령과 성별에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영원히 뇌리에 각인될만한 판타지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본 책은 총 85,000자로 구성됐다. 액션, 로맨스, 모험, 긴장으로 꽉 찬 소설. 책을 손에 쥐고 다시 한번 사랑에 빠져라. vampirebooksite. com (‘일변’ 평론) 명예의 눈물 ((마법사의 링 연작소설 제 4권)) 모건 라이스 모건 라이스 작가 소개 모건 라이스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USA 투데이(USA Today)에 장편 판타지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작가로 선정됐다. 저서로는 17권으로 구성된 장편 서사 판타지 연작소설 ‘마법사의 링,’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11권의 연작소설 ‘뱀파이어 저널(집필 중),’ 또 다른 베스트 셀러 1위인 2권의 스릴러 소설 ‘생존 3부작(집필 중)’이 있다. 이 외에도 5권의 장편 서사 판타지 연작소설인 ‘왕과 마법사(집필 중)’를 새롭게 집필 중이다. 모건 작가의 소설은 오디오 북과 인쇄 본으로 출판 됐고, 25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모건 작가는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www.morganricebooks.com (http://www.morganricebooks.com)로 방문하셔서 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무료 소설, 증정품, 무료 앱 다운로드의 혜택과 최신 단독 소식을 제공받으실 수 있으며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한 작가와의 소통이 가능합니다! 모건 라이스 작가에 보내는 찬사 “음모, 대항책, 미스터리, 용맹한 기사들, 실연의 아픔이 가득한 사랑의 결실, 기만, 배신 등 마법사의 링은 즉각적인 흥행요소를 고루 갖춘 소설이다. 읽는 내내 즐거움이 가득하고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매료된다. 판타지 소설 애독자라면 영구 소장도서로 추천한다.” --도서 및 영화 평론, 로버트 메토스. “재미있는 서사 판타지 소설.” —컬커스 리뷰(Kirkus Reviews) “눈을 뗄 수 없는 무언가가 이 책에서 시작된다.” --샌 프란시스코 북 리뷰(San Francisco Book Review) “액션이 가득한 소설…. 흥미로운 라이스 작가의 글과 견고한 전제.” --퍼블리셔 위클리(Publishers Weekly) “기상이 넘치는 판타지….젊은 성인 시리즈물의 시작.” --미드웨스트 북 리뷰(Midwest Book Review) 모건 라이스 저서 왕과 마법사 용의 부상 (제1권) 피어나는 용맹 (제2권) 명예의 무게 (제3권) 용맹의 구축 (제4권) 어둠의 왕국 (제5권) 마법사의 링 연작소설 전사로의 원정 (제1권) 왕들의 행군 (제 2권) 용의 숙명 (제 3권) 명예의 눈물 (제4권) 영광의 맹세 (제5권) 용맹의 충전 (제6권) 검의 의식 (제7권) 수여된 무기 (제8권) 주술에 사로잡힌 하늘 (제9권) 방패의 바다 (제10권) 강철 집권 (제11권) 화마에 갇힌 땅 (제 12권) 여왕들의 규칙 (제13권) 형제들의 맹세 (제14권) 인간의 꿈 (제15권) 전사들의 마상 시합 (제16권) 전투의 선물 (제17권) 생존 3부작 연작소설 아레나 원: 슬레이버서너스(제1권) 아레나 투(제2권) 뱀파이어 저널 연작소설 일변 (제1권) 사랑 (제2권) 배신 (제3권) 운명 (제4권) 욕망 (제5권) 약혼 (제6권) 맹세 (제7권) 발견 (제8권) 부활 (제 9권) 갈망 (제10권) 숙명 (제11권) 저작권 © 2013 모건 라이스 본 전자 책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 저작물입니다. 1976 미국 저작권법 규정에 따라 허용 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문서의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도 무단복제와 무단전제가 금지되며 데이터베이스 또는 검색 시스템에 저장하거나 저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본 전자 책은 개인 소장용입니다. 재판매나 무단배포는 금지됩니다. 다른 사람과 책을 공유하고자 하는 경우 각각의 추가 복사물을 구매하십시오. 직접 구매하지 않았거나 개인 소장용이 아닌 책은 반환해주시기 바라며 개인 소장용을 구입하십시오. 저자의 노력을 존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이름, 등장인물, 사업, 기관 명, 장소 명, 이벤트, 사건 등은 모두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이자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모든 이름과 생존 및 죽음에 대한 유사한 상황은 전적으로 우연입니다. Shutterstock.com.의 허가 아래 사용된 표지 이미지 저작권 RazoomGame 소유. 한글번역 김성희 목차 제 1장 (#ud5f1836f-83e1-5c59-9a0b-e8ffcae3993d) 제 2장 (#u705ab72d-4bce-569e-a39b-61a0ad9feffa) 제 3장 (#uca6b6fa7-e5a2-53e9-947b-834b3bd144f2) 제4 장 (#u6c281d08-ff9f-50cd-ae7d-593436ff800a) 제 5장 (#ubd1beffe-39d2-5daf-8401-7d5573ad4eaa) 제6장 (#ua80e4539-bfa5-5501-af4f-bad08ec32cc2) 제7장 (#uea75bbb3-05ef-54ad-9601-117342208629) 제8장 (#ufd31a17b-61cc-5cf4-89f8-ada3b10d01d4) 제 9장 (#u4d3b4e7a-71ca-5088-8146-e5a422745534) 제 10장 (#u56a97e03-cbda-57c7-b045-95736fc5cb5b) 제 11장 (#u0e51c73a-9eb1-55a6-99a8-352d65eb3f8d) 제 12장 (#uf5085967-5791-5670-93eb-8b26ecfad130) 제 13장 (#litres_trial_promo) 제 14장 (#litres_trial_promo) 제 15장 (#litres_trial_promo) 제 16장 (#litres_trial_promo) 제 17장 (#litres_trial_promo) 제 18장 (#litres_trial_promo) 제 19장 (#litres_trial_promo) 제 20장 (#litres_trial_promo) 제 21장 (#litres_trial_promo) 제 22장 (#litres_trial_promo) 제 23장 (#litres_trial_promo) 제 24장 (#litres_trial_promo) 제 25장 (#litres_trial_promo) 제 26장 (#litres_trial_promo) 제 27장 (#litres_trial_promo) 제 28장 (#litres_trial_promo) 제 29장 (#litres_trial_promo) 제 30장 (#litres_trial_promo) 제 31장 (#litres_trial_promo) 제 32장 (#litres_trial_promo) 제 33장 (#litres_trial_promo) 제 34장 (#litres_trial_promo) 제 35장 (#litres_trial_promo) 제 36장 (#litres_trial_promo) 제 37장 (#litres_trial_promo) 제 38장 (#litres_trial_promo) 제 39장 (#litres_trial_promo) “위대함을 두려워 말라. 어떤 사람은 위대하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위대함을 성취하며,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위대함을 떠맡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십이야 中에서 제 1장 루안다 공주는 전쟁터를 가르며 뛰어갔다. 군사들이 말을 타고 달리는 길목 사이 사이로 몸을 피하며 맥클라우드 왕이 있는 조그만 집으로 향했다. 공주의 손에는 차가운 금속 말뚝이 쥐여 있었다. 백성들의 터전이자 흙먼지로 가득한 도시를 가로지르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공주는 최근 몇 개월간 이뤄진 침략에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끌려 다니며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모두 목격하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었다. 공주 안에서 무언가가 북받쳐 올랐다. 이제는 맥클라우드 왕가의 군사 전체와 맞서는 한이 있더라도, 무슨 수를 써서든 이 사태를 막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루안다 공주는 자신이 하려는 일이 무모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는 것도, 맥클라우드 왕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공주는 앞을 향해 달려가며 애써 이런 나약한 생각을 지웠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옳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에서 수 많은 군인들 사이로 저 멀리 맥클라우드 왕이 보였다. 그는 비명을 지르는 불쌍한 여인을 어깨에 메고 인적이 없는 작은 백토 집으로 들어갔다. 맥클라우드 왕은 이내 집의 대문을 닫아버렸고, 닫힌 대문 위로 흙먼지가 일어났다. “루안다!” 누군가가 공주를 불렀다. 공주가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에서 공주를 뒤쫓는 브론슨 왕자가 보였다. 끝없는 군대의 행렬에 브론슨 왕자는 몇 번이나 멈춰 섰다가 다시 공주 뒤를 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루안다 공주에게는 다름아닌 지금이 적기였다. 만약 브론슨 왕자가 공주를 따라잡으면 공주가 굳게 마음먹은 일을 막아 설 게 분명했다. 공주는 말뚝을 꼭 움켜쥐고 더욱 속력을 내어 달렸다.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무모한지,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지 생각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했다. 맥클라우드 왕의 모든 군대가, 모든 사령관들이 또한 그의 아들이, 모두 그에게 기가 눌려 꼼짝도 못하는 상황에서 과연 공주가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설상가상으로 루안다 공주는 군인은 고사하고 기존에 사람을 죽여본 일이 없었다. 결국 공주는 맥클라우드 왕 앞에서 얼어붙어버리게 될까? 공주는 맥클라우드 왕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 브론슨 왕자의 경고처럼 진정 맥클라우드 왕은 불굴의 존재일까? 루안다 공주는 맥클라우드 왕의 군대가 벌이는 참사의 현장과 더불어 비참하게 망가져버린 공주의 고국을 바라보며 맥클라우드 왕의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공주는 브론슨 왕자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맥클라우드 왕가와의 결혼에 동조했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하이랜드 산맥이 서부 왕국과 동부 왕국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 덕에 맥길 왕국은 그 동안 운이 좋았다고 봐야 했다. 이제서야 공주는 그 덕에 두 왕국이 서로 분리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절실하게 실감했다. 공주가 너무 순진했다. 맥클라우드 왕국이 그렇게 잔인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던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자신이 맥클라우드 왕국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맥클라우드 왕의 며느리가 되고 언젠가는 맥클라우드 왕국의 여왕이 되는 일에 큰 사명을 걸었던 스스로의 어리석었던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 이제서야 공주는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깨달았다. 다시 안전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맥길 왕국에서 지낼 수만 있다면 자신의 신분, 돈, 명예를 포함한 모든 걸 얼마든지 내던질 수 있었다. 공주는 자신을 맥클라우드 왕국에 시집 보낸 아버지에게 분노가 일었다. 철없고 순진했던 공주는, 당시 그로 인한 결과를 더욱 신중하게 고려했었어야 했다. 자신의 딸까지 희생시킬 정도로 정치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공주는 또한 그렇게 세상을 떠나버린 아버지가 미웠다. 이 모슨 상황 속에 홀로 자신을 남겨둔 아버지가 미웠다. 최근 몇 개월간 루안다 공주는 의지할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똑똑히 인지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그녀가 이 모든 상황을 바로잡을 기회였다. 공주는 부들부들 떨며 작은 벽토 집에 도착했다. 어두운 오크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공주는 혹시 맥클라우드 병사가 자신을 가로막을까 두려운 마음에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다행히 모두가 전쟁에 열중해있느라 공주에게는 시선을 두지 못했다. 공주는 대문으로 다가가 한 손에는 말뚝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론 최대한 조심스럽게 맥클라우드 왕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대문 손잡이를 돌렸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실내가 꽤 어두웠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 빛에 익숙했던 두 눈이 천천히 어두운 실내에 적응해 나갔다. 집 안은 바깥보다 시원했다.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집안 가득 잡혀온 여자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침내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졌고 공주는 맥클라우드 왕을 찾기 위해 집 안을 둘러봤다. 공주의 시선에 바닥 위에서 벌거벗겨진 여자 위로 바지를 벗고 뒹굴고 있는 맥클라우드 왕의 모습이 포착됐다.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맥클라우드 왕이 두꺼운 손바닥으로 여자의 입을 막자 두 눈이 쏟아져나올 듯 소리 없이 악을 쓰고 있었다. 루안다 공주는 이 상황이 실제 상황이라는 걸, 자신이 맥클라우드 왕을 죽이려고 한다는 걸 새삼 실감할 수 없었다. 공주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말뚝을 움켜쥐고 앞으로 나아갔지만 무릎이 후들거렸다. 공주는 성공하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마치 생명 줄을 붙잡듯 공주는 온 힘을 다해 말뚝을 꼭 쥐었다. 부탁 드립니다. 신이시여, 제가 이 남자를 죽일 수 있게 해주세요. 공주의 귓가에 맥클라우드 왕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며 야생 동물처럼 찡그리고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맥클라우드 왕이 움직일 때마다 여자의 비명 소리는 더욱 괴롭게 울려 퍼졌다. 루안다 공주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또다시 조심스럽게 앞으로 한 발짝씩 걸어가기를 반복하며 맥클라우드 왕에게 다가갔다. 공주는 눈을 내리깔고 맥클라우드 왕의 살피며 말뚝을 박을만한 곳을 찾았다. 다행히도 그는 갑옷을 벗고 얇은 셔츠 하나만을 걸친 상태로 지금은 온 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맥클라우드 왕의 땀냄새가 루안다 공주의 코끝을 찌르자 공주는 얼굴을 찌푸렸다. 갑옷을 벗은 건 맥클라우드 왕의 실수였다. 공주는 이것이 그의 마지막 실수로 남을 거라 생각했다. 공주는 훤히 드러난 그의 등에 말뚝을 내리꽂을 심산으로 두 손으로 말뚝을 높이 치켜들었다. 맥클라우드 왕의 괴성이 절정에 이름과 동시에 공주는 양 손으로 있는 힘껏 말뚝을 더욱 높이 들어올렸다. 공주는 이 순간 이후 벌어질 모든 변화에 대해 생각했다. 맥클라우드 왕은 극악무도한 철권통치를 내려놓고, 공주의 백성들은 더 이상의 침략을 겪지 않게 된다. 공주의 남편은 왕권을 이어받아 맥클라우드 왕의 뒤를 이를 것이고 마침내 모든 것이 안정을 찾게 된다. 그러나 루안다 공주는 겁에 질려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 당장 말뚝을 내리꽂지 않으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공주는 숨을 참고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다. 양 손으로 머리위로 높이 든 말뚝을 단숨에 무름을 구부리고 사력을 다해 있는 힘껏 맥클라우드 왕의 등을 향해 내리 꽂았다. 그러나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져 공주는 아무런 대비도 할 수 없었다. 말뚝이 맥클라우드 왕의 등에 꽂히려던 순간 맥클라우드 왕은 몸을 굴려 자리를 피했다. 거구의 맥클라우드 왕은 공주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민첩했다. 맥클라우드 왕이 옆으로 굴러 자리를 피하는 바람에 그 밑에 있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공주가 말뚝을 거두기엔 이미 너무 늦은 순간이었다. 공주는 그대로 말뚝을 내리 꽂았고, 끔찍하게도 여자의 가슴을 그대로 뚫었다. 말뚝이 박힌 여자는 그대로 위로 몸을 세우며 부들부들 떨었다. 루안다 공주는 말뚝이 여자의 살을 깊게 파고들어 심장에 찔리는 감촉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여자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고 여자는 배신감을 느낀 듯한 눈빛으로 루안다 공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마침내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다시 누워 싸늘한 시체가 됐다. 루안다 공주는 그 자리에 꼼짝없이 무릎을 꿇고 굳은 채 앉아있었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상황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맥클라우드 왕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한쪽 볼에 심한 고통을 느껴졌다. 공주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바닥에 쓰러지면서 그제서야 공주는 맥클라우드 왕이 자신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는 걸 느꼈다. 공주는 세찬 주먹 한 방에 바닥으로 날아가 쓰러졌다. 맥클라우드 왕은 마치 공주의 모든 움직임을 예상한 것 같았다. 그는 공주가 말뚝을 들고 다가오는 걸 모른 척 연기했다. 맥클라우드 왕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주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공주를 함정에 빠트려 여자를 죽이게 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공주에게 살인의 죄책감을 씌워줄 치밀한 계산을 미리 하고 있었다. 눈 앞의 모든 상황이 깜깜해지기 전에, 루안다 공주는 희미하게 맥클라우드 왕의 얼굴을 살짝 보았다. 그는 입을 벌리고 공주를 내려보며 크게 웃고 있었다. 숨소리는 들짐승처럼 거칠었다. 맥클라우드 왕의 커다란 부츠가 공주의 얼굴을 뭉개기 직전 공주가 들은 마지막 맥클라우드 왕의 목소리는 짐승처럼 거칠었다. “내 수고를 덜어줬군.” 맥클라우드 왕이 말했다. “이 여자랑은 재미를 다 봤거든.” 제 2장 그웬돌린 공주는 왕실의 구불구불한 뒷길을 달렸다. 왕실로부터 멀어지는 그녀의 두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공주는 최대한 개리스 왕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기 위해 애썼다. 개리스 왕과의 대면 이후, 펄스의 처형을 목격한 이후, 개리스 왕의 협박을 들은 이후 공주의 심장은 계속해서 요동쳤다. 공주는 간절한 마음으로 개리스 왕의 말 속에 담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해내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나 사악한 개리스 왕의 논간 속에서, 진실과 거짓은 서로 얽히고 설켜 진실이 무엇인지 간파하기 힘들었다. 그는 공주를 겁주려던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가 한 모든 말이 사실일까? 목이 매달린 펄스의 시체를 목격한 그웬돌린 공주는 어쩌면 이번에는 개리스 왕의 모든 말이 사실일거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고드프리 왕자가 정말로 독약을 마셨고, 어쩌면 정말로 공주가 반인 반수인 네바런스 족에게 팔려갈 수도 있었고, 어쩌면 정말로 지금 이 순간 토르가 매복을 당하고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이 모든 생각들로 공주는 몸서리가 났다. 달리는 내내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만 했다. 이미 멀리 떠난 토르에게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고드프리 왕자를 찾아 정말 독약을 마셨는지, 살아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웬돌린 공주는 무질서하고 지저분한 왕실의 뒷길을 달리며 다시 이곳을 찾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 공주는 다시는 이런 곳에 발을 디딜 일이 없을 거라 다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만약 고드프리 왕자가 음독을 했다면 분명 술집에서 사건이 벌어졌음이 분명했다. 그곳이 아니라면 어디서 그런 일을 당한단 말인가? 공주는 고드프리 왕자가 다시 술집을 찾은 데 화가 났다. 그가 경계를 늦추고 방심한 데 화가 났다. 그러나 그런 마음보다는 그를 잃을까 두려운 마음이 더욱 컸다. 근래에 들어 공주는 고드프리 왕자와 사이가 더욱 각별했고, 아버지를 잃은 지금, 고드프리 왕자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공주는 가슴이 뻥 뚫리는 듯 공허했다. 공주는 또한 위험에 처한 고드프리 왕자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공주는 공포에 젖은 상태로 길을 달렸다. 공주가 공포를 느낀 까닭은 길가에 널린 주정뱅이들이나 건달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도, 공주의 오빠, 개리스 왕이 공주가 느끼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그의 모습은 악마 같았다. 공주는 개리스 왕의 얼굴과, 눈빛을 마음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검은 눈빛과 얼굴에는 영혼이 없었다. 무언가에 씌인 것 같았다. 개리스 왕이 아버지의 왕좌에 앉아있는 모습이 더욱 그의 악마 같은 모습을 실감케 했다. 공주는 개리스 왕의 앙갚음이 두려웠다. 어쩌면 그는 정말로 공주를 반인 반수와 혼인시킬 계획을 세웠는지도 몰랐다. 공주는 결코 그런 일을 용납할 수 없었다. 또는 어쩌면 그가 공주를 방심하게 만들어 이번에는 정말로 공주를 암살시키려는 의도일 수도 있었다. 길을 달리며 공주는 주변을 경계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낯설고 적대적으로 보였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개리스 왕이 보낸 적으로 보였다. 공주는 점점 큰 피해망상에 사로잡혔다. 골목길을 도는 순간 술 취한 늙은 남자와 부딪히는 바람에 공주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깜짝 놀라 의도치 않게 크게 비명을 질렀다. 공주는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잠시 뒤에야 공주는 그가 개리스 왕이 보낸 암살자가 아닌, 그저 술 취한 조심성 없는 행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공주는 가던 길을 재촉하며 고개를 돌려 뒤를 살폈다. 술 취한 노인은 사과할 정신도 없이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이 뒷골목의 무례함이 참기 힘들었다. 고드프리 왕자만 아니었다면 공주는 이곳에 올 일이 없었다. 순간 자신을 이런 상황에 밀어 넣은 고드프리 왕자가 미웠다. 왜 고드프리 왕자는 술집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인가? 또 다른 골목길을 돌자 찾던 술집이 나타났다. 고드프리 왕자의 단골 술집이었다. 존재를 변명이라도 하듯 기울어진 건물, 조금 열려있는 입구에서는 술 취한 주정뱅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공주는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술집 안에서 시야를 확보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술집 안으로 들어서자 술 냄새와 취객들의 땀 냄새가 풍겼고, 공주의 등장에 술집 안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술집 안을 꽉 채운 취객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공주를 보곤 놀란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왕족의 귀한 신분인 공주가 고급스러운 옷을 차려 입고 수년간 청소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듯한 술집 안에 들어서 있었다. 공주는 고드프리 왕자의 술 친구, 배가 나오고 키가 큰 아코드에게 다가갔다. “오빠는 어디 있지?” 공주가 물었다. 늘 흥에 취해 천박한 농담을 뱉고 스스로 만족해하던 아코드가 맥없이 고개를 젖는 모습에 공주는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안 좋아요, 공주님.” 아코드가 침울하게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공주가 요동치는 심장을 달래며 대답을 재촉했다. “ 술을 잘못 마셨어요.” 고드프리 왕자의 또 다른 술친구, 키가 크고 마른 펄톤이 대답했다. “어제 밤에 쓰러졌어요. 아직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거지?” 공주는 넋이 나간 듯 아코드의 팔목을 쥐고 물었다. “간신이요.” 아코드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힘겹게 숨이 끊어져가고 있어요. 약 한 시간 전에 말을 멈췄어요.” “어디 있는데?” 공주가 다그쳤다. “뒤쪽에 있어요, 아가씨.” 술집 주인이 침울해 보이는 표정으로 바에 기대 술잔을 닦으며 대답했다. “왕자님을 어떻게 처리할지 계획을 제대로 세워야 할 거에요. 저는 제 사업체에 시체가 오래 머무는 건 원치 않거든요.” 술집 주인의 말에 단단히 화가 난 공주는 단검을 꺼내 칼끝을 술집 주인의 목에 겨눴다. 깜짝 놀란 술집 주인은 침을 꿀꺽 삼켰고, 술집 안은 순식간에 적막에 싸였다. “첫 번째로,” 공주가 입을 열었다. “이곳은 사업체가 아니야. 그저 술이나 파는 곳이지. 그리고 왕족에게 다시 한번 그런 식으로 무례하게 말한다면 병사들을 대동해 이곳을 밀어버릴 거야. 내게 공주라는 칭호를 붙여 말하도록.” 공주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랐다. 자신의 이러한 대담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공주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술집 주인은 다시 한번 침을 삼켰다. “공주님.” 술집 주인이 공주에게 예를 갖췄다. 그웬 공주는 여전히 단검을 겨누고 있었다. “두 번째로, 내 오빠는 죽지 않아, 더군다나 이런 곳에서는 더더욱. 오빠의 시체는 이곳을 찾는 그 어떤 살아있는 자의 영혼보다 너의 사업체에 영광으로 남을 거야. 그리고 만약 오빠가 죽는다면, 네게 그 책임을 물을 것이야.” “그렇지만 전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습니다, 공주님.” 술집 주인이 애원했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술을 줬습니다!” “누군가가 분명 독을 탄 걸 거에요.” 아코드가 설명했다. “누군지는 알 수가 없어요.” 펄톤이 거들었다. 그웬 공주는 천천히 단검을 내렸다. “오빠에게 안내해, 당장!” 공주가 명령을 내렸다. 술집 주인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바 뒤에 있는 옆 문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공주가 그의 뒤를 따랐고 아코드와 펄톤도 공주를 따라갔다. 공주는 술집의 뒷문으로 안내됐다. 그곳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주도 모르게 헉 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공주의 눈에는 바닥에 곧게 누워있는 고드프리 왕자가 보였다. 고드프리 왕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개리스 왕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다. 공주는 서둘러 고드프리 왕자 곁에 다가갔다. 고드프리 왕자를 잡은 공주의 손끝에 차갑고 축축한 촉감이 전해졌다. 왕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바닥에 머리를 대로 누운 왕자의 이마 위로 기름진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그러나 공주는 미약하게나마 왕자의 맥이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맥이 뛰고 있었다. 공주는 또한 고드프리 왕자가 숨을 쉴 때마다 부푸는 그의 가슴을 살폈다. 아직 살아있었다. 순간 차오르는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 오빠를 이렇게 방치해둘 수가 있지?” 공주가 술집 주인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왕족인 내 오빠가 죽어가는데 바닥에 개처럼 버려 논거야?” 잔뜩 긴장한 술집 주인이 침을 삼켰다. “그럼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공주님?” 술집 주인이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여긴 병원이 아닙니다. 다들 왕자님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빤 죽지 않았어!” 공주가 소리쳤다. “그리고 당신들 두 사람.” 공주가 아코드와 펄톤을 보며 소리쳤다. “당신들이 무슨 친구야? 오빠라면 너희들을 이렇게 내버려 뒀을까?” 아코드와 펄톤은 서로 마주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용서해 주세요.” 아코드가 용서를 구했다. “어젯밤 의원이 와서 왕자님을 살펴보곤 왕자님이 죽어간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제 시간이 흘러 죽기만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제 밤 내내 왕자님 곁을 지켰습니다, 공주님.” 펄톤이 설명했다. “왕자님 곁을 지켰어요. 저희는 잠시 슬픔을 지우려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공주님이 오신 거에요, 그리고—” 여전히 분노에 젖은 그웬 공주는 몸을 일으켜 두 사람의 손에 쥐어진 술잔을 뺏어 멀리 바닥에 내팽개쳤다. 바닥 위로 술이 흥건히 스며들었다. 아코드와 펄톤은 흠칫 놀라 서로를 바라봤다. “각자 오빠를 한쪽에서 들어.” 공주가 차가운 어조로 명령했다. 공주는 스스로에게서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 “여기서부터 오빠를 들어 옮겨. 나를 따라 왕실 의원의 집으로 따라와. 오빠는 제대로 치료를 받을 거고, 돌팔이 같은 의원의 진단에 맞춰 죽을 때까지 그저 방치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당신.” 공주가 술집 주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오빠가 회복되고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만약 내 오빠에게 술을 판다면, 널 지하 감옥에 죽을 때까지 가둬 둘 거야.” 술집 주인은 공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제 움직여!” 공주가 소리쳤다. 아코드와 펄톤은 서둘러 움직였다. 공주는 지체 없이 그곳에서 나왔고 공주의 뒤로 아코드와 펄톤이 고드프리 왕자를 부축해 공주의 뒤를 따라 술집 밖으로 나섰다. 공주 일행은 서둘러 왕실의 뒷길을 따라 왕실의 의원 집으로 향했다. 공주는 쉬지 않고 마음속으로 너무 늦지만은 않았기를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다. 제 3장 토르는 말을 타고 흙먼지가 일어나는 왕궁의 외각을 달렸다. 리스 왕자, 오코너, 엘덴, 쌍둥이들이 토르 옆에서 함께 말을 타고 달렸고 크론 또한 토르 옆을 따라 달렸다. 토르 일행은 캔드릭 왕자, 콜크 사령관, 브롬 총사령관, 부대원들 및 실버 전사들과 함께였다. 막강한 군대는 맥클라우드 왕가의 군대에 맞서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모두가 하나의 움직임으로 도시를 구하기 위해 달렸고 말을 달리는 소리가 마치 천둥 번개처럼 찌렁거리며 귀를 먹먹하게 했다. 맥길 왕가의 군대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달렸고 어느새 두 번째 태양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토르는 자신이 이 훌륭한 군대의 일원으로서 함께 한다는 사실이, 생애 첫 군사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이제야말로 왕의 부대의 일원으로서 정식으로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사실, 왕의 부대의 모든 부대원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지원 부대로 합류한 상황이었다. 토르와 토르의 친구들도 모두 그 대열에 함께했다. 왕의 부대 부대원들은 수천만 명의 맥길 왕가의 군사들 중 일부에 불과했다. 그리고 토르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무언가 대단한 조직의 일원이 된 듯한 소속감을 느꼈다. 토르는 또한 사명감을 느끼기도 했다.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라고 생각됐다. 맥길 왕국의 백성들은 맥클라우드 왕가의 군대에 점령당했고, 이로써 맥길 왕가의 군대는 백성들을 끔직한 운명에서 해방시켜야 할 임무를 지게 된 것이다. 때문에 현재 토르가 속한 군대에게 주어진 임무의 중대함이 생생하게 전해질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토르에게는 지금 이 순간순간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엄청난 기량을 자랑하는 군대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토르는 안정감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토르가 속한 군대는 진정한 전사들로 구성된 군대였다. 이는 곧 이들 전사들이 그들처럼 최정예 군사들이 있는 군대에 맞서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곧 토르는 수많은 전쟁을 치른 진정한 군대와 맞서게 되는 것이다. 즉, 생사의 기로에 놓인 전쟁을 앞두고 있는 것이었다. 그 전쟁은 지금까지 맞닥뜨린 훈련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의 전쟁이었다. 토르는 말을 타고 달리는 와중에 손을 뻗어 새총과 새로 받은 검을 더듬으며 다시 한번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혹시 오늘이 지나기 전, 검이 적군의 피로 물들게 될지 의문이 들었다. 또는 자신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맥길 왕가의 군대는 커다란 함성을 질렀다. 그들의 기합 소리는 말들이 달리는 소리를 크게 압도했다. 구부러진 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포위된 도시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도시 위로 시커먼 연기가 하늘 위로 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맥길 왕가의 군대는 더욱 박차를 가해 말을 달려 전진했다. 토르 또한 말을 더욱 세게 달리며 다른 부대원들과 함께 속도를 냈다. 전사들은 일제히 검을 꺼내 들고 무기를 손에 쥐고는 죽을 각오로 포위된 도시를 향해 질주했다. 거대한 군대 안에서 토르는 소규모 그룹으로 분리됐다. 토르와 토르의 친구들은 안면이 없는 다른 부대원들과 함께 분리되어 총 10명이 함께 했다. 해당 그룹에는 근위대 상급지휘관인 포그 지휘관이 속해있었다. 그는 큰 키에 마르고 강단 있는 체격을 지녔으며 피부는 곰보 자국이 가득했고 아주 짧은 회색 빛 머리카락에 눈동자가 어둡고 눈이 깊숙이 꺼져있는 인물이었다. 맥길 왕가의 군대는 그렇게 소 규모로 분리되어 다 갈래로 이동했다. “이 그룹은 나를 따르라!” 포그 지휘관이 지휘봉으로 토르와 토르 일행들에게 손짓하며 자신을 따라 무리에서 벗어나도록 명령했다. 토르가 속한 그룹은 그의 명령에 따라 그의 뒤로 줄을 서서 대규모 군대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토르는 뒤를 돌아 봤다. 토르가 속한 그룹은 다른 그룹들에 비해 보다 멀리 떨어져 움직이고 있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의문이 들 무렵 포그 지휘관이 소리쳤다. “우리는 맥클라우드 군대의 측면을 공격할 것이다!” 토르와 일행들은 말을 타고 전진하며 기대와 걱정이 섞인 눈빛을 교환했다. 이들 일행은 시야에서 더 이상 대규모 군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측면으로 계속 달렸다. 머지 않아 이들 앞에 새로운 길이 펼쳐졌고, 더 이상 도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토르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맥클라우드 왕가의 군대는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포그 지휘관은 맘을 멈춰 세우고 수풀이 우거진 작은 언덕 앞에서 가던 길을 멈췄다. 토르와 나머지 일행들도 그를 따라 모두 말을 멈춰 세웠다. 토르와 일행들은 포그 지휘관이 갑자기 멈춰선 영문을 몰라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대기한다, 그것이 우리의 임무다.” 포그 지휘관이 설명했다. “너희들은 아직 어린 병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너희들을 전쟁에 직접 투입하지 않으려 한다. 맥클라우드 병사들이 이곳에 오는 일은 드물다. 따라서 이곳에서 대기하면 너희들은 안전할 것이다. 우리가 다른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이곳을 샅샅이 탐색하라. 바로 움직여라!” 포그 지휘관은 말을 발로 차며 언덕 위로 향했다. 토르와 일행들도 지휘관을 따라 말을 달렸다. 그렇게 토르가 속한 작은 그룹은 먼지가 일어나는 들판을 달렸다. 주변에는 다른 병사들이나 적군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토르는 전쟁에 참여하는 그룹에서 열외 된 사실에 크게 실망했다. 왜 부대원들은 이렇게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앞으로 계속해서 말을 달릴수록, 토르는 이상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무슨 기분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육감이 무언가가 잘못됐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언덕의 정상에 오르자, 오랫동안 버려진 듯한 유적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높고 얇은 탑이 하나 놓여 있었다. 순간 토르는 마음 어딘가에서 뒤를 돌아 상황을 확인해보라는 암시 같은 게 일어났다. 돌아보니, 포그 지휘관의 모습이 보였다. 포그 지휘관은 의아하게도 그룹과 점점 거리를 두더니 어느새 멀리 멀어져 가고 있었다. 토르는 계속해서 포그 지휘관을 유심히 바라봤다. 이내 포그 지휘관은 뒤로 돌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왔던 길을 따라 전속력으로 말을 질주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토르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왜 포그 지휘관은 그렇게 서둘러 떠난 것인가? 토르의 옆에서 크론이 칭얼거렸다. 방금 벌어진 일이 여전히 의아한 토르는 일행을 따라 언덕의 정상에 있는 유적지에 다다랐고, 황무지 외에 다른 것을 볼 거란 기대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토르가 속한 일행은 유적지 앞에서 급하게 말을 멈춰 세울 수 밖에 없었다. 모두가 일제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얼어붙어버리고 말았다. 그곳에는 맥클라우드 왕가의 군대 전체가 그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토르 일행은 함정에 빠진 것이었다. 제4 장 그웬돌린 공주는 복잡하게 얽힌 왕실의 거리를 서둘러 걸어갔다. 공주의 뒤로 아코드와 펄톤이 고드프리 왕자를 부축하며 따라갔고 공주는 그들 앞에서 인파를 뚫으며 길을 안내했다. 공주는 최대한 빨리 고드프리 왕자를 왕실 의원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고드프리 왕자가 죽게 내버려줄 순 없었다. 이 모든 일을 겪고 나서 이렇게 이런 식으로 죽어버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행여라도 고드프리 왕자가 사망하게 된다면 그 소식을 접한 개리스 왕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지어질 게 뻔히 보였다. 공주는 그런 결과가 절대는 벌어져선 안 된다고 마음먹었다. 조금 더 일찍 고드프리 왕자를 발견하지 못한 게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모퉁이를 돌아 도시의 광장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광장에는 수 많은 군중들이 모여있어 여느 때보다 북적거렸다. 고개를 위로 올리자 펄스가 보였다. 여전히 밧줄에 목이 매달린 채 모두의 구경거리가 되도록 시체가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공주는 의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개리스 왕의 극악무도함을 반영하는 끔찍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공주는 그 어디를 가더라도 개리스 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어제만 해도 펄스와 이야기를 나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공주와 이야기를 나눴던 펄스가 지금은 목에 밧줄이 감긴 채 매달려 있었다. 공주는 자신의 주변을 에워싼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다. 그리고 공주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다른 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광장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선 두려워할 여유가 없었다. 공주는 용기를 내 참형 당한 시신이 매달려 있는 광장을 가로질러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공주가 발걸음을 재촉하는 순간, 예상치도 못하게 검은색 의복을 입은 왕실의 사형 집행인들이 공주의 길을 막아 섰다. 공주는 처음에는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거라 생각했지만, 이내 그들은 공주에게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공주님” 사형 집행관이 예를 갖춰 말을 걸었다. “저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무런 명도 받지 못했습니다. 저 시체를 제대로 묻어줘야 할지 빈민가 시체더미에 버려야 할지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습니다.” 공주는 가던 길을 멈췄다. 이런 결정을 자신이 내려야 하는 상황에 심기가 불편했다. 공주가 멈춰서는 바람에 아코드와 펄톤 또한 공주 뒤에 가던 길을 멈췄다. 눈부신 태양빛을 받으며 공주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매달려 있는 시체를 바라봤다. 공주는 사형 집행관을 그냥 무시한 채 가던 길을 재촉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순간, 공주에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쳤다. 공주는 아버지를 위해 정의를 구형하고 싶었다. “저 자를 빈민가 시체더미에 버리거라.” 공주가 대답했다. “아무런 표식도 남기지 말고 제대로 묻지도 말거라. 난 저자가 역사의 기록 속에서 영원히 잊혀지길 바란다.” 사형 집행관은 공주의 명을 받고 고개를 끄덕여 예를 갖춰 대답했다. 공주는 정당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어찌됐든 아버지를 진짜로 살해한 건 펄스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이런 처형은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애도할 마음도 전혀 없었다. 공주는 순간 아버지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 어느 때보다 아버지의 강력한 힘이 느껴졌고, 펄스의 처리에 평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있네.” 공주가 사형 집행관을 불러 세워 덧붙였다. “지금 당장 시체를 내리게.” “지금이요, 공주님?” 사령 집행관이 물었다. “그렇지만 폐하께서 시체를 무기한으로 매달아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웬 공주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 공주가 대답했다. “이게 폐하의 명령이네.” 공주가 거짓말을 전했다. 공주는 다시 한번 자신의 거짓말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개리스 왕은 창 밖을 내려다보며 펄스의 시체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확인할 게 분명했다. 펄스의 시체를 치우면 개리스 왕의 심기가 불편해질 게 자명했다. 이는 곳 개리스 왕에게 모든 일이 자신의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리는 공주의 경고이기도 했다. 그웬 공주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할 무렵, 저 멀리서 새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공주는 발걸음을 멈추고 저 멀리 높은 하늘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에스토펠레스가 있었다. 공주는 한 손을 올려 강렬한 햇빛에 눈가를 가리고 자신이 정말 에스토펠레스를 본 건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공중에서 에스토펠레스가 다시 한번 울부짖으며 날개를 크게 펼쳤다. 순간 공주에게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공주는 한 손을 뻗고 휘파람을 불어 에스토펠레스를 불렀다. 에스토펠레스는 순식간에 하강하여 공주의 손목 위에 안착했다. 에스토펠레스의 무게가 상당했고, 매의 발톱이 공주의 피부를 짓눌렀다. “토르에게 가보렴.” 공주가 에스토펠레스에세 속삭였다. “전쟁에서 토르를 찾아 토르를 보호해줘. 어서 가렴!” 공주가 손을 하늘 위로 올리며 소리쳤다. 공주는 에스토펠레스가 날개 짓을 하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에스토펠레스가 토르를 지켜주기를 기도했다. 에스토펠레스에게는 무언가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특히 토르와 에스토펠레스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교감이 있었기에 공주는에스토펠레스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공주는 다시 걸음을 재촉해 왕실의 의원이 머무는 곳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공주 일행은 여러 개의 아치형 문을 통과해 왕실 밖으로 벗어났고 최대한 빨리 이동했다. 공주는 고드프리 왕자가 도움을 손길을 받을 수 있게 생명 끈을 꼭 붙잡고 있길 바랬다. 왕실을 벗어나 작은 언덕을 오를 무렵 어느덧 두 번째 태양이 저물고 있었다. 때마침 왕실 의원이 머무는 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작은 집이었다. 방은 하나밖에 없었으며 백토로 벽을 발라 마감된 짐이었다. 양 쪽으로 작은 창문이 나 있었고 정면에는 아치형의 오크나무로 만든 대문이 있었다. 지붕에는 온통 온갖 종류의 약재와 형형색색의 다양한 식물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작은 오두막이 식물원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공주는 서둘러 대문으로 달려가 몇 번이나 문을 두드렸다. 오두막의 문이 열렸고 공주 앞에 왕실 의원이 모습이 나타났다. 일레프라. 그녀는 한 평생을 왕실 의원으로 왕족들을 치료했다. 공주는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알고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레프라는 여전히 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공주보다도 조금 성숙해 보일 뿐이었다. 그녀의 피부는 아름답게 윤이 났고, 상냥하고 부드러운 초록빛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약 18세 정도의 젊은 여성에 불과해 보였다. 그웬 공주는 일레프라의 실제 나이가 그보다 훨씬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레프라는 또한 공주가 아는 몇 안 되는 매우 명석하고 유능한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공주 일행을 본 일레프라의 시선은 단번에 고드프리 왕자를 향했다. 일레프라는 걱정이 앞선 눈빛으로 상황이 절박하다는 걸 짐작하고 공주를 반기는 일을 생략했다. 일레프라는 서둘러 고드프리 왕자에게 다가가 손으로 그의 이마를 짚어 보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안으로 모시세요.” 일레프라가 서둘러 고드프리 왕자를 부축해온 아코드와 펄톤에게 말했다. “빨리 서둘러 주세요.” 일레프라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대문을 활짝 열었고, 공주 일행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공주는 일행 중 가장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여 작은 문 안으로 들어가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집 안이 어두워 시야를 확보하는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어둠에 익숙해지자 어린 시절 이곳을 찾았을 때 봤던 그때 그대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작고, 따뜻하고, 깨끗하고 다양한 식물과 약초와 온갖 종류의 물약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이곳에 왕자님을 눕히세요.” 일레포라가 심각한 어조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저기 모퉁이에 있는 침대에요. 셔츠와 신발을 벗겨주시고 자리를 좀 비켜주세요.” 아코드와 펄톤은 그녀의 말에 따랐다. 두 사람이 왕자를 눕히고 문 밖으로 나가려던 때 공주는 아코드의 팔을 붙잡았다. “문 밖에서 망을 봐줘.” 공주가 명령했다. “누구든지 고드프리 오빠를 쫓는 자는 아직도 고드프리 오빠를 노리고 있을 거야. 또는 나를 노리거나.” 아코드는 고개를 끄덕였고 펄톤과 함께 문 밖으로 나갔다. “이 상태로 얼마나 있었던 거죠?” 일레프라가 고드프리 왕자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왕자의 손목과 배와 목의 맥을 짚으며 공주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다급하게 물었다. “어젯밤부터야.” 공주가 대답했다. “어젯밤이라고요!” 일레프라가 따라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엔 걱정과 우려가 가득했다. 일레프라는 오랫동안 말 없이 고드프리 왕자를 진찰했고, 표정은 더욱 어둡게 변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일레프라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레프라는 다시 한번 고드프리 왕자의 이마를 짚고 두 눈을 감은 뒤 아주 오랫동안 숨을 골랐다. 오랜 시간 동안 방 안은 깊은 침묵이 흘렀고, 그웬 공주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초초해 더 이상 보고만 있기만 힘들었다. “독약.” 마침내 일레프라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마음으로 고드프리 왕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웬 공주는 이번에도 역시 그녀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레프라는 일평생 병명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 일이 없었다. 그녀 혼자서 군대가 사람을 구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려냈다. 그녀의 그런 능력이 학습에 의한 것인지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인지 알 수 없었다. 일레프라의 어머니 또한 의원이었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 또한 의원이었다. 그럼에도 일레프라는 모든 시간을 독극물을 연구하고 그에 대한 치유법을 연구하는데 열중했다. “매우 강력한 독이에요.” 일레프라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흔히 접하지 못하는 독이죠. 아주 귀하고 값비싼 독이에요. 고드프리 왕자님을 해하려 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독을 써야 왕자님을 해칠 수 있는지 분명히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왕자님이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왕자님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신 분인가 봐요.” “아버지께 물려받은 강인함이지.” 그웬 공주가 대답했다. “고드프리 오빠는 강인한 체력을 가졌어. 모든 맥길 왕가의 후손들이 그러하듯, 체력을 타고났지.” 일레프라는 방을 가로질러 나무 판 위에 몇몇 약초를 올려두고 섞기 시작했다. 각각의 약초들을 빻아서 갈아둔고 그곳에 액체를 넣어 혼합했다. 그렇게 완성한 약은 녹색의 진득한 연고 같은 모습이었다. 일레프라는 손바닥에 연고를 가득 얹어 서둘러 고드프리 왕자에게 다가가 그의 목과 겨드랑이와 이마에 연고를 발랐다. 그리고 나서 다시 방을 가로질러 유리병에 담긴 불은 색, 갈색, 보라색이 나는 액체를 섞기 시작했다. 액체가 서로 섞이면서 연기가 일어났다. 일레프라는 혼합한 액체에 나무 숟가락을 넣어 오랫동안 저은 뒤 다시 고드프리 왕자에게 달려가 그의 입술에 액체를 발랐다. 고드프리 왕자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일레프라는 한쪽 팔로 고드프리 왕자의 머리를 일으켜 세우고 혼합한 액체를 왕자의 입술 사이로 밀어 넣어 입 속에 집어넣었다. 대부분의 액체가 입 옆으로 흘러나왔지만 그 중 일부는 목구멍 안으로 타고 몸 속에 들어갔다. 일레프라는 왕자의 입 밖으로 흘러나온 액체를 닦고 다시 왕자의 입가를 닦았다. 그리고는 그제서야 등을 기대고 한 숨을 쉬었다. “오빠가 살 수 있겠어?” 공주가 초조하게 물었다. “아마도요.” 일레프라의 어조가 침울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그렇지만 충분하지 않아요. 이제 왕자님의 목숨은 왕자님의 운명에 달려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그웬 공주가 절실하게 물었다. 일레프라는 고개를 돌려 그웬 공주와 눈을 맞췄다. “왕자님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긴 밤이 될 거에요.” 제 5장 캔드릭 왕자는 오늘에서야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만끽할 수 있게 됐다. 캔드릭 왕자의 마음 속에는 그 동안 지하 감옥에서 지냈던 시간이 떠올랐다. 덕분에 이제는 작은 것 하나까지도 소중히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들었다. 내리쬐는 태양, 머리를 스치는 바람과 같이 바깥 세상에서 느끼는 모든 것이 감사했다. 말을 타고 달리며, 주변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느끼며, 다시 실버 전사로 돌아와 다시 무기를 걸치고 동료 전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말을 달리는 이 순간이 마치 대포를 맞은 듯 기존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무모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캔드릭 왕자는 몸을 낮추고 바람을 가르며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그의 옆에는 친한 동료 아트미가 말을 달리고 있었다. 이렇게 동료 실버 전사들과 함께 싸울 수 있다는 사실에, 이번 전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맥클라우드 왕가가 점령한 마을을 되찾고 그들에게 침략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리라 굳게 다짐했다. 캔드릭 왕자는 한 시라도 빨리 피 흘리는 전투를 맞을 생각에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그는 사실 지금 그가 느끼는 분노와 노여움이 맥클라우드 왕가가 아닌, 자신의 동생 개리스를 향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캔드릭 왕자는 자신을 구금 시킨 것도 모자라 자신에게 아버지의 암살자라는 누명을 씌우고, 동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을 연행하고 또 처형하려 계획했던 개리스 왕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개리스 왕에게 보복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은 지금, 적어도 오늘 당장 보복을 할 수 없기에 캔드릭 왕자는 그 분노를 맥클라우드 왕가에 돌리고 있었다. 캔드릭 왕자는 왕실로 돌아가 모든 것을 바로잡을 심산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개리스 왕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여동생 그웬돌린 공주를 새로운 지도자로 세울 생각이었다. 전속력으로 말을 달리다 보니 군대는 어느덧 약탈당한 도시에 가까이 다가갔다. 엄청나게 거대한 검은 연기와 구름이 군대 앞에 펼쳐졌고 탁하고 매운 연기가 캔드릭 왕자의 코를 찔렀다. 이렇게 처참히 짓밟힌 도시를 보고 있자니 캔드릭 왕자는 마음이 아팠다. 만약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다면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만약 개리스가 후계를 잇지 않았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맥길 왕가와 실버 전사에게 있어 이는 불명예스러운 오점으로 남을 일이었다. 캔드릭 왕자는 백성들과 마을을 구하기에 군대가 너무 늦지 않게 도착했기 만을 간절히 빌었다. 맥클라우드 왕가가 저 곳에 도착한지 오래 되지 않았기를, 너무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지 않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캔드릭 왕자는 더욱 박차를 가해 다른 전사들보다 앞서 나갔다. 모든 전사들은 엄청난 속도의 벌떼처럼 일제히 도시의 입구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모두가 하나의 움직임으로 달렸다. 캔드릭 왕자는 맥클라우드 군대와 맞서기 위해 검을 뽑아 들고 도시 안으로 진입하며 크게 기합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다른 전사들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전쟁에 대비했다. 그러나 먼지가 가득한 도시 안으로 진입한 캔드릭 왕자는 눈 앞의 광경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변으로는 온통 침략이 벌어진 후 남은 잔재들뿐이었다. 망가진 도시와, 이곳 저곳에서 일어난 불과 붕괴된 집들과 쌓여있는 시체와 바닥에 널브러진 여인들의 모습뿐이었다. 가축들은 도살 당했고 벽마다 핏자국이 선명했다. 어마어마한 대학살의 현장이었다. 맥클라우드 왕가는 이곳의 선량한고 무고한 백성들을 모두 비참이 유린했다. 눈 앞의 광경에 도저히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왕자는 맥클라우드 왕가의 비겁한 행동에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캔드릭 왕자를 의아하게 만든 건 그 어디에서 맥클라우드 왕가의 군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전 군대가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마치 맥길 왕가의 군대가 이곳에 온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눈치였다. 여전히 곳곳에서 일어나는 불길을 보아하니 맥클라우드 왕가에서 일부러 맥길 왕가의 군대를 유인하기 위해 불을 피우고 달아난 게 분명했다. 이렇게 유인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캔드릭 왕자는 고심했다. 왜 맥클라우드 왕가의 군대는 맥길 왕가의 군대를 이곳으로 유인했는지 이유를 알아야 했다. 대체 왜 그랬단 말인가? 캔드릭 왕자는 신속히 주변을 둘러보며 혹시 사라진 병사들이 없는지, 혹시 다른 곳으로 유인 당한 병사들은 없는지 빠르게 살폈다. 캔드릭 왕자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병사들을 따로 유인해 그들을 매복하기 위한 계략이었다는 생각이 빠르게 들었다. 왕자는 샅샅이 곳곳을 살피며 어느 병사들이 사라졌는지 가늠했다. 그리고 순간 캔드릭 왕자의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왕자의 후견부대원. 토르. 제6장 언덕의 정상에서 말에 앉아 있는 토르의 곁에는 부대원 친구들과 크론이 함께 있었다. 토르는 눈 앞에 펼쳐진 믿지 못할 광경을 바라봤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엄청난 병력의 맥클라우드 병사들이 말을 타고 토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토르 일행은 그렇게 함정에 빠졌다. 포그 지휘관이 분명 목적을 가지고 이들을 이곳으로 인도한 게 분명했다. 그가 이들을 배신한 것이었다. 그러나 도대체 왜 그랬단 말인가? 토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눈 앞에 닥친 죽음의 위기를 바라봤다. 맥클라우드 왕가의 병사들이 크게 함성을 지르며 토르 일행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불과 몇 백 미터 거리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부대원들이 정상에 오르자 빠르게 접근했다. 재빨리 뒤를 돌아 봤지만, 토르 일행을 지원해줄 병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고립된 상황이었다. 토르는 이곳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 외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작은 언덕에서, 오랫동안 버려진 유적지가 있는 이 곳이 바로 토르가 죽을 자리였다. 토르 일행에게 승산은 없었다. 토르와 부대원들이 저 많은 맥클라우드 왕가의 병력을 무찌를 방법이라는 게 존재할 리가 만무했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진정한 전사로서 정의롭게 싸우다 죽고 싶었다. 왕의 부대에서 훈련을 하며 명예로운 죽음이란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우친 토르였다. 도망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눈 앞에 닥친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토르는 고개를 돌려 부대원 친구들의 얼굴을 살폈다. 그들 또한 토르처럼 공포에 질려 창백한 얼굴이었다. 그들도 토르와 똑같이 죽음을 예상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용감하게 죽음에 맞서기로 한 모습이었다. 토르 일행이 탄 말들이 겁에 질려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부대원들은 그 누구도 주춤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그 누구도 도망가려 하지 않았다. 부대원들은 하나의 공동체였다. 친구 그 이상이었다. 백일 훈련을 함께 받으며 토르와 친구들은 어느덧 형제애로 뭉치게 됐다. 부대원들 모두가 서로의 곁을 지켰다. 모두가 자신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마친 부대원들이었다. 그리고 부대원들에게는 비루하게 목숨을 구하는 것보다 명예가 더 중요했다. “친구들이여, 우리 앞에 전쟁이 펼쳐질 거야.”리스 왕자가 천천히 말을 뱉으며 검을 꺼내 들었다. 토르는 허리춤에서 새총을 꺼냈다. 맥클라우드 왕가의 군대가 근접하기 전 최대한 많은 적군들을 쓰러뜨리기 위함이었다. 오코너는 짧은 창을 꺼냈고 엘덴은 투창을, 콘발은 헤머를, 콘벤은 창살을 꺼냈다. 토르와 안면이 없는 다른 부대원들도 각각 검과 방패를 꺼내 전투에 대비했다. 긴장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토르 또한 두려움을 느꼈다. 천둥번개 같은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지고 하늘을 찌르는 듯한 맥클라우드 왕가의 병사들의 기합소리가 울리자 마치 엄청난 천둥이 토르 일행을 향해 달려드는 것 같았다. 적에게 맞설 전략이 필요했다. 그러나 병법이라곤 아는 게 없었다. 토르의 곁에 있던 크론이 으르렁거렸다. 그런 크론의 모습에 토르는 깊은 영감을 받았다. 크론은 지금껏 위기 앞에서 한번도 도망가거나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크론은 털을 잔뜩 세우고 으르렁거리며 혼자서 모든 병사들을 상대할 기세로 점점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토르는 크론이야말로 진정한 전쟁의 협력자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다른 병사들이 우릴 지원하러 와줄까?” 오코너가 물었다. “제 시간에 오긴 힘들 거야.” 엘덴이 대답했다. “포그 지휘관이 우릴 함정에 빠뜨렸어.” “그렇지만 왜 그런 거지?” 리스 왕자가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토르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가 그런 이유가 저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누군가 제가 죽길 바라는 것 같아요.” 부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토르를 바라봤다. “왜?” 리스 왕자가 물었다. 토르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토르 또한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토르는 이 모든 것이 선대 맥길 왕의 암살과 관련된 왕실의 음모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가장 의심이 가는 인물은 개리스 왕이었다. 아마도 그가 토르를 위험 인물이라 판단한 듯 보였다. 토르는 부대원 친구들까지 위험에 빠뜨리게 한 사실에 큰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 토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만히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오히려 가장 먼저 선제 공격에 나서 적들의 시선을 교란해 나머지 부대원들이 도망갈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고 싶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겁먹지 않고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다. 속으론 많이 떨었지만 겉으론 태연하게 보이려 최대한 애를 썼다. 토르는 부대원들을 두고 더욱 앞으로 전진하며 달려나가 토르 일행을 향해 달려오는 병사들을 향해 달렸다. 토르 옆에는 크론이 바짝 붙어 달렸다. 토르의 뒤에서 부대원들의 기합소리가 들렸다. 모든 부대원 일행이 전속력으로 질주해 토르 뒤를 바짝 쫓으며 전진했다. 부대원 일행은 토르와 불과 2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모두가 기합 소리를 질러대며 전속력으로 전쟁을 향해 달렸다. 토르는 계속해서 선두에서 달려나갔고, 부대원들의 지원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토르의 맞은편에는 맥클라우드 왕가의 선발대 병사들이 전속력으로 토르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약 50여명 정도 돼 보였다. 10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빠르게 토르를 향해 달려왔다. 토르는 새총을 꺼내 돌을 장착하고 목표물을 정해 신속하게 날렸다. 토르의 목표물은 가장 리더로 보이는 듯한 큰 체구의 은색 흉갑을 두른 병사였다. 토르는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췄다. 토르는 새총으로 상대편 병사의 갑옷 바로 위로 드러난 목 부분을 맞췄고 가장 선두에서 달려오던 병사는 말에서 떨어져 바닥 위를 굴렀다. 그가 떨어지는 동시에 그의 말도 함께 바닥에 굴렀고 그 바람에 그의 뒤에서 달려오던 수십 명의 병사들이 타고 있던 말이 서로의 발에 걸려 서로 부딪히며 다 함께 한데 엉켜 땅 위를 나뒹굴었다. 맥클라우드 병사들이 어떻게 손을 쓰기도 전에 토르는 다시 한번 새총을 장착해 목표물을 향해 날렸다. 이번에도 한치의 빈틈도 없는 명중이었다. 토르는 또 다른 리더로 보이는 병사의 관자놀이를 정확하게 조준했고 새총에 맞은 병사가 쓰러지며 그 뒤를 따르던 나머지 병사들도 도미노처럼 일제히 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선두로 나선 토르의 뒤에서 상대편 병사들을 향해 투창과 창이 날아갔고 이후 해머와 창살이 날아갔다. 토르는 뒤에서 달려오는 부대원들이 적군을 향해 함께 공격해주며 토르를 지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부대원들은 모두 결의가 대단해 보였다. 부대원들이 던진 무기는 맥클라우드 왕가의 병사들을 맞혔고 몇몇 병사들이 말에서 굴러 떨어지며 그들 뒤에서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다른 병사들마저 그들에게 길이 막혀 제각각 말에서 떨어졌다. 그 덕분에 눈 앞에는 엄청난 먼지 바람이 일어났다. 그러나 맥클라우드 왕가의 군대는 막강하기 그지 없었다. 이번엔 그들이 반격에 나섰다. 토르와 적군과의 거리가 30미터 정도로 좁혀졌을 무렵 맥클라우드 왕가의 병사들은 토르를 향해 갖가지 무기를 던지며 공격에 나섰다. 해머가 날아오자 토르는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찰나의 순간에 해머가 토르의 오른 쪽 볼을 아슬아슬하게 비켜 지나갔고, 윙 하는 소리가 바로 그의 귓가를 세게 스치며 지나갔다. 눈앞에서 날아오는 창을 피해 토르는 신속히 몸을 숙였다. 창 끝이 갑옷을 조금 뜯고 지나갔지만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창살이 토르의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자 토르는 방패를 들어올려 날아오는 창살을 막았다. 창살이 그대로 방패에 박혔고 토르는 방패를 내리고 손을 뻗어 방패에서 창살을 뜯어 다시 적군에게 창살을 날렸다. 토르가 던진 창살은 적군의 갑옷을 뚫고 그대로 가슴에 박혔다. 창살을 맞은 적군은 소리를 지르며 말에서 떨어져 그대로 즉사했다. 토르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고 죽을 각오와 함께 적군의 어마어마한 병력 속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토르는 어마어마한 기합 소리와 함께 검을 빼 들어 크게 함성을 질렀다. 토르의 뒤로 부대원 친구들이 함께하며 모두가 큰 소리로 죽을 각오를 하듯 크게 함성을 외쳤다. 무기가 부딪히며 울리는 쩌렁쩌렁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수염이 덥수룩한 거구의 전사가 토르를 향해 달려들어 양 손의 도끼를 공중으로 처 들어올린 뒤 토르의 목을 겨냥하며 힘껏 내리쳤다. 토르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도끼를 피해 허리를 숙이는 동시에 적군의 배를 검으로 베었다. 적군은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졌고 그의 양 손에 쥐어있던 도끼는 공중으로 날아갔다. 공중으로 날아간 도끼는 다른 맥클라우드 병사가 타고 있던 말을 내리 찍었고 그 덕에 말에 타고 있던 병사가 말에서 떨어지며 다른 병사들의 진로를 방해했다. 토르는 계속해서 엄청난 병사들이 포진해있는 적군들의 무리 속을 파고들었다. 눈 앞을 막고 있는 수백 명의 병사들을 가르며 그들이 겨누는 칼날과 도끼와 철퇴를 막고 피하며 반격하면서 다시 검으로 적군들을 찌르고 다시 몸을 숙여 공격을 막아내는 동시에 앞으로 돌진했다.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토르는 너무 민첩하고 너무 날쌨다. 어마어마한 병력의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맥클라우드 병사들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돌진하는 토르를 막아내지 못했다. 토르가 돌진하는 곳곳마다 금속이 부딪히는 어마어마한 소리가 들렸다. 곳곳에서 토르를 향한 강력한 무기들이 날아들었고 토르는 방패를 들어올리고 검을 휘두르며 모든 공격을 하나하나 막아냈다. 그러나 그 많은 공격을 모두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적군이 휘두른 검이 토르의 어깨를 스쳤다. 피가 흘러나왔고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이 절로 나왔다. 천만 다행으로 검은 살짝 스쳐 지났을 뿐이었다. 부상은 심하지 않았다. 그 정도 부상에는 끄떡도 없었다. 토르는 계속해서 반격에 나섰다. 맥클라우드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토르는 양 손으로 적군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반격했고 부대원들이 토르 편에 서서 함께 공격하자 이내 적군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맥클라우드 병사들이 토르 외에 다른 부대원들을 상대하며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는 더욱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검과 방패가 부딪히고 창이 말을 찌르고 투창이 적군의 갑옷을 뚫으며 곳곳에서 혈투가 벌어졌고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대원들은 유리한 지점에 있었다. 민첩함으로 무장한 10명의 소규모 부대원들은 거대한 적군들의 한 가운데 심장부에 위치해 있었다. 정 중앙에 부대원 일행을 놓고 맥클라우드 병사들이 이들을 둘러쌓고 있었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막아서는 형국으로 맥클라우드 병사들은 수 많은 병력에도 불구하고 한번에 다같이 부대원 일행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토르는 한번에 두 명 또는 세 명의 적군들을 상대했다. 적군들이 서로를 막고 있어 그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토르의 뒤로는 부대원들이 주둔하여 뒤에서 공격하는 적군들을 막아주고 있었다. 한 병사가 토르가 다른 병사들과 전투를 벌이는 틈을 타 토르의 머리 위로 철퇴를 휘둘렀지만, 때마침 크론이 으르렁거리며 병사를 공격했다. 크론은 높이 뛰어올라 적군의 팔을 물어 뜯어 사방으로 적군의 피가 흩어졌다. 그 덕분에 적군이 휘두른 철퇴는 방향을 잃고 다른 곳으로 향했고 다행히 토르의 머리는 무사할 수 있었다. 정신 없이 싸우다 보니 적군과 맞서고 적군을 베고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해내는 모든 장면이 흐릿하게 느껴졌다. 토르는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을 총 동원해 공격을 막았고, 다시 반격에 나서고 틈틈이 다른 부대원들을 도우며 동시에 스스로를 방어했다. 본능적으로 그간 습득해 온 모든 훈련 기술을 발휘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곳에서 이뤄지는 공격을 막아내는 기술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기술들이 이미 토르의 몸에 베어 있었다. 왕의 부대는 훌륭하게 부대원들을 훈련시켰다. 어느덧 이 전쟁이 익숙해져 가며 적응해버린 토르였다. 두려움은 여전히 마음 속에 남아 있었지만, 그 두려움에 휩싸이는 대신 스스로의 공포를 자제하고 조종할 수 있었다. 토르는 계속해서 적군과 대결했다. 계속되는 싸움에 서서히 양쪽 팔의 움직임이 무거워졌고 어깨에 통증이 더해졌을 무렵, 콜크 사령관이 전해줬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너희들의 적들이 절대 너희들의 방식으로 공격할거라 착각하지 말거라.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싸운다. 너희에겐 전장이지만 그들에겐 다른 의미일 수도 있다 순간 토르는 작은 키에 어깨가 넓은 적군이 양 손에 돌기가 있는 쇠사슬을 높이 들고 뒤에서 리스 왕자를 향해 돌격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리스 왕자는 상대 적군을 보지 못했다. 순식간에 리스 왕자의 목숨이 날아갈 판국이었다. 토르는 재빨리 말에서 뛰어내려 공중으로 몸을 날렸고 적군이 왕자의 목에 쇠사슬을 감지 직전 서둘러 그를 가격했다. 적군은 말과 함께 바닥으로 엎어지며 토르와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토르는 그대로 계속해서 바닥 위를 굴러갔다. 토르 주변으로 바람이 휘몰아쳤고 곳곳에서 말들이 발을 굴렀다. 토르는 떨어진 적군을 놓지 않고 땅에서 계속 제압했다. 상대편 적군이 엄지를 치켜들고 토르의 눈알을 파내려는 찰나, 토르는 새 울음 소리를 들었다. 이내 어디선가 에스토펠레스가 날아와 적군의 눈을 발톱으로 할퀴었다. 적군은 눈을 감싸며 비명을 질렀고 토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팔꿈치로 적군을 가격해 그를 쓰러뜨렸다. 적군을 무찔렀다는 안도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누군가가 토르의 복부를 세차게 가격하는 바람에 토르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적군 한 명이 양 손에 도끼를 쥐고 토르의 가슴을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토르는 재빨리 몸을 돌려 피했고 토르를 향해 날아오던 도끼는 아무런 소득 없이 허공을 갈랐다. 죽기 일보직전의 순간이었다. 때마침 크론이 토르를 공격하던 적군에게 달려들었다. 크론은 공중으로 뛰어올라 송곳니로 적군의 팔꿈치를 물었다. 적군은 손을 뻗어 몇 번이나 크론을 세게 내리쳤지만 크론은 꿈쩍도 않고 버티며 깨문 팔꿈치를 절대 놓지 않았고 결국엔 적군의 팔꿈치 살점이 크론과 함께 떨어져 나갔다. 적군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적군은 다시 일어나 크론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토르가 재빨리 나서 방패로 적군의 검을 막아냈다. 방패를 쥔 손에 일어난 엄청난 타격의 충격이 토르의 온 몸으로 전해졌다. 다행히 크론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방패를 뻗어 크론을 방어한 토르 자신은 무방비 상태였다. 그때 말을 탄 또 다른 병사가 토르에게 달려가 말로 토르를 밟았다. 말발굽에 얼굴을 밟힌 토르는 계속해서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말의 발길에 온 몸의 뼈가 부서져 나가는 듯 했다. 곧이어 더 많은 병사들이 말에서 내려 토르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말에서 내려온 건 큰 실수였다. 다시 말에 올라탈 수가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었다. 바닥에 쓰러진 토르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주변을 살폈지만 다른 부대원들도 모두 적군에 맞서느라 정신 없는 모습이었다. 부대원들은 점점 기세가 꺾이고 있었다. 토르와 일면이 없던 부대원 한 명이 엄청난 비명을 외쳐댔다. 돌아보니 적군의 칼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고 칼에 찔린 부대원은 말에서 떨어지며 그대로 사망했다. 일면이 없던 또 다른 부대원이 사망한 부대원을 돕기 위해 급히 달려와 부대원을 죽인 병사를 창살로 찔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적군이 뒤에서 달려들며 검으로 그의 목을 베는 바람에 해당 부대원은 고통으로 신음하며 말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토르에겐 6명의 적군들이 달려들었다. 한 병사는 검을 들어 토르의 얼굴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토르는 방패를 높이 들어 그의 검을 막았고 그와 동시에 귓가에 금속이 부딪히는 쩌렁쩌렁한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러나 순식간에 토르의 측면에서 한 병사가 토르의 손을 발로 차 토르가 쥐고 있던 방패를 멀리 내팽개쳐버렸다. 또 다른 병사는 토르의 손목을 발로 밟아 토르를 바닥에 고정시켰다. 그 옆에 있던 병사가 때맞춰 창을 높이 놀려 토르의 가슴을 향해 청을 내리 꽂았다. 토르는 재빨리 몸을 돌렸고 크론이 창을 내리꽂는 병사에게 달려들어 그를 넘어뜨렸다. 그러나 다른 병사가 곤봉을 휘두르며 크론을 세게 가격하자 크론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대로 쓰러져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른 병사가 토르를 향해 달려와 토르의 눈앞에서 잔뜩 찌푸린 인상으로 삼지창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토르를 도와줄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병사는 토르의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삼지창을 내리 꽂았다. 토르는 적군에게 붙잡혀 바닥에 고정된 체 무방비 상태로 적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지금 이 순간이 생애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제7장 그웬 공주는 비좁은 오두막 안에서 고드프리 왕자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두 사람 곁에는 일레프라도 함께였다. 공주는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었다. 벌써 수 시간째 이어지는 고드프리 왕자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일레프라의 표정이 계속해서 어두워지는 모습을 더 이상은 지켜보기가 버거웠다. 고드프리 왕자의 죽음이 눈앞에 닥친 게 확실했다. 그러나 속수무책인 상황이었다. 공주는 아무런 대비도 못하고 자리만 지킬 뿐이었다. 무언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봐야 했다. 그 무엇이라도 상관 없었다. 고드프리 왕자에 대한 걱정과 죄책감이 공주의 마음 속을 가득 메웠고 토르에게도 같은 심정이었다. 공주의 눈 앞에는 토르가 전쟁에 나서며 개리스 왕이 미리 파 놓은 함정에 빠지는 모습을, 그리고 그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무슨 수를 써서든 토르를 도와야 했다. 이렇게 앉아만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공주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서서 방 밖으로 걸어갔다. “어디를 가세요?” 오랫동안 기도를 올린 탓에 목이 쉰 일레프라가 거친 목소리로 공주에게 물었다. 그웬 공주는 고개를 돌려 일레프라를 바라봤다. “곧 돌아올게.” 공주가 대답했다. “내가 꼭 해봐야 할 게 있어.” 공주는 오두막의 문을 열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해가 지는 저녁 노을이 눈이 부셔 공주는 두 눈을 깜빡였다. 하늘은 붉은 빛과 보라 빛을 뿜으며 저물어갔고 두 번째 태양은 저 멀리 수평선에 걸려 있었다. 문 밖에는 아코드와 펄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공주의 등장에 자리에서 일어나 걱정스런 표정으로 공주를 바라봤다. “왕자님은 살 수 있나요?” 아코드가 물었다. “잘 모르겠어.” 공주가 대답했다. “여기 계속 있어줘. 보초를 서줘.” “어디로 가십니까?” 펄톤이 물었다. 핏빛으로 묽든 듯한 하늘과 알 수 없는 신비한 느낌을 전달하는 공기를 마시며 공주는 마음 속으로 한 사람을 떠올렸다. 공주를 도와줄 수 있는 한 사람을 생각해냈다. 아르곤. 만약 아직까지 그웬 공주가 믿을 수 있는 누군가가 남아 있다면, 토르를 아끼고 선대 맥길 왕에게 충성을 바친 사람이 남아있다면, 공주를 도울 수 있는 힘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아르곤이었다. “특별한 누군가를 찾아봐야겠어.” 공주가 대답했다. 공주는 뒤돌아 황급히 평야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공주의 걸음은 점점 빨라져 어느새 아르곤의 거처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꽤 오랜만에 찾아가는 아르곤의 거처였다. 어린 시절 한 번 와본 게 전부였지만 공주는 기억을 더듬어 그가 황량하고 험준한 평원 한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공주는 계속해서 쉬지 않고 달렸고 숨이 계속 차오를수록 평야는 점점 험준해졌다. 잔디는 자갈 밭으로 바뀌었고 어느새 자갈 위로 커다란 돌 더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이 휑했다. 달리면 달릴수록 주변 풍경이 으스스하게 변해갔다. 그 모습이 마치 별 위를 걷고 있는 득한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공주는 마침내 아르곤의 오두막에 도착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 올랐지만 공주는 지체하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 문을 두드리는 문고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공주는 이곳이 아르곤의 거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르곤!” 공주가 외쳤다. “저에요! 맥길 왕의 딸이요! 저를 좀 들여보내주세요! 명령이에요!” 공주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지만 아무런 기척도 없이 황량한 바람만 불어댔다. 결국 공주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온 몸이 탈진한 상태였고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한 자신의 모습에 속이 상했다. 공주는 더 이상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큰 공허함을 느꼈다. 태양이 하늘 아래로 자취를 감추며 핏빛으로 붉게 물들었던 노을에 황혼이 찾아왔다. 공주는 다시 뒤로 돌아 언덕을 내려갔다. 길을 걸으며 공주는 눈물을 닦아냈다. 이제는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알고 싶었다. “부탁 드려요, 아버지.” 공주가 눈을 감고 허공에 소리쳤다. “제게 신호를 보내주세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제발 고드프리 오빠가 저렇게 죽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그리고 토르가 죽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저를 사랑하신다면, 대답해주세요.” 그웬 공주는 다시 침묵했다. 그리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길을 걸었다. 그러던 순간 마침내 어떠한 영감이 공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호수. 슬픔의 호수. 그랬다. 슬픔의 호수는 생사의 기로에 놓인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를 위해 기도를 올리러 가는 곳이었다. 그곳은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나무로 둘러싸인 태초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레드우드 속 작은 호수였다. 사람들은 그곳을 신성한 장소로 섬겼다. 아버지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웬 공주가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공주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이 순간 아버지가 함께라는걸 느꼈다. 공주는 서둘러 레드우드를 향해, 나무에 둘러 쌓인 호수를 향해, 자신의 슬픔을 들어줄 호수를 향해 달렸다. * 그웬 공주는 슬픔의 호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의 무릎 밑 바닥에는 호수 주변을 원형으로 둘러싼 솔방울들이 부드럽게 펼쳐져 있었다. 공주의 시선은 고요한 호수에 멈춰 있었다. 지금껏 보안 온 호수 중에서 가장 고요한 호수였다. 고요한 호수는 그 한가운데에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달빛을 담고 있었다. 원형의 호수에는 이제 막 뜨기 시작한 달 뿐만 아니라 저무는 태양이 함께 드리워져 있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뜨고 지는 달과 태양이 하나의 호수 안에 머물러 있었다. 공주는 지금 이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신성한 기운을 느꼈다. 마치 하루가 저물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창과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신성한 기운이 펼쳐진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신성한 곳에서, 모든 게 가능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공주는 그렇게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흘리며 성심 성의껏 간절히 기도했다. 지난 며칠 동안 일어난 일은 공주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다. 공주는 그로 인한 고충을 모두 쏟아냈다. 고드프리 왕자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고, 토르를 위해서도 모든 걸 걸고 기도했다. 두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을 잃고 혼자서 개리스 왕과 맞서야 하는 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공주는 또한 반인 반수와 혼인을 올리게 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공주는 삶이 철저히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어쩌면 답이 아니라, 삶을 버틸 희망이 필요했다. 맥길 왕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호수의 신, 숲의 신, 산의 신, 바람의 신 등 다양한 신들에게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그웬 공주는 그러한 신들을 모두 부정했다. 공주를 토르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왕국의 믿음을 믿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 속에 속했다. 공주는 이런 수많은 신이 아닌, 우주 전체를 관장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신을 믿었다. 그리고 지금 공주는 그 절대적인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부탁 드립니다, 신이시여. 공주가 기도를 올렸다. 토르가 제게 돌아오게 해주세요. 전쟁에서 안전하게 돌아오게 해주십시오. 무사히 매복을 피하게 해주십시오. 고드프리 오빠를 살려주세요. 그리고 저를 지켜주세요. 그 누구도 저를 이곳에서 멀리 보내 반인 반수와 결혼하게 만들게 하지 말아주세요.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제게 신호를 보여주세요. 제게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려주세요. 그웬 공주는 레드우드의 높이 뻗은 울창한 소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다. 공주는 머리 위로 불어오는 바람에 실랑이는 나뭇가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눈 앞에선 소나무의 솔잎들이 바람을 타고 호수 위로 내려 앉았다. “소원을 빌 때는 신중해야 하네.” 누군가가 공주에게 말을 걸었다. 공주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공주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누군가가 서 있는 모습에 공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몹시 놀라긴 했지만 공주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였다. 공주는 그가 누군지 이내 알아차렸다. 오래된 깊은 목소리, 나무들보다 오래된 목소리, 이 지구보다 오래된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잘 아는 공주는 순간 가슴이 벅차 올랐다. 공주는 흰색 망토와 망토에 붙어있는 후드를 눌러쓰고 곁에 서 있는 그를 바라봤다. 그의 두 눈은 마치 공주의 영혼을 뚫을 듯한 기세로 이글거리며 공주를 마주했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지팡이의 끝은 지는 태양과 떠오르는 달을 향하고 있었다. 이르곤이었다. 공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르곤을 마주했다. “찾았었어요.” 공주가 말했다. “오두막에 갔었어요. 제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셨나요?” “난 모든걸 듣는다네.” 아르곤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공주는 그러한 아르곤의 모습에 잠시 말을 멈추고 의아해했다. 아르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제가 뭘 해야 하는지 말해주세요.” 공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무엇이든지 하겠어요. 부탁이에요, 토르가 죽지 않게 해주세요. 토르가 죽게 내버려둬선 안돼요!” 공주는 앞으로 다가가 아르곤의 손목을 잡고 애원했다. 그러나 공주가 아르곤의 팔목을 잡자 그의 손목이 불타는 듯 뜨겁게 달아올랐고 공주는 아르곤의 에너지에 압도당하며 뻗었던 손을 다시 거둘 수밖에 없었다. 아르곤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고래를 돌려 호수 쪽으로 몇 걸음 발길을 옮겼다. 그는 그곳에서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며 서있을 뿐이었다. 그의 두 눈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공주는 아르곤 곁에 다가가 말없이 그의 곁을 지켰다. 아르곤이 다시 말을 건넬 때까지 숨죽이며 기다렸다. “운명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단다.” 아르곤이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그러길 애원하는 자에게는 엄청난 대가가 따르지. 공주는 생명을 구하길 원하는구나. 고귀한 노력이네. 하지만 두 사람의 목숨을 모두 구할 수는 없네. 선택을 해야 한단다.” 아르곤은 고개를 돌려 공주를 바라봤다. “오늘밤, 토르를 구하겠느냐, 아니면 네 오빠를 구하겠느냐?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게 된단다. 운명이지.” 아르곤의 질문은 공주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런 선택이 어디 있죠?” 공주가 반문했다. “한 사람을 구하려면, 한 사람을 저버려야 하잖아요.” “그렇지 않단다.” 아르곤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모두 죽을 운명이란다. 애석하구나.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마치 칼날이 공주의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었다. 두 사람이 모두 죽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었다. 운명이 정말로 그렇게 잔인한 것이던가? “두 사람을 두고 한 사람을 고를 순 없어요.” 마침내 공주가 힘없이 대답했다. “물론 토르를 향한 사람이 오빠에 대한 마음보다 강해요. 그렇지만 고드프리 왕자는 제 혈육이고 오빠에요.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의 목숨을 저버리는 선택은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제가 이런 선택을 하는 걸 원치 않을 거에요.” “그렇다면 두 사람 모두 죽겠구나.” 아르곤이 대답했다. 그웬 공주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잠시만요!” 공주가 돌아서는 아르곤을 멈춰 세웠다. 아르곤은 다시 몸을 돌려 공주를 마주했다. “저는 어때요?” 공주가 물었다. “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대가로 제가 죽으면요? 가능한가요? 두 사람을 모두 살리고 제가 죽으면 안 될까요?” 아르곤은 공주의 진심을 판독이라도 하는 듯 아주 오랜 시간 공주를 바라봤다. “진심이구나.” 아르곤이 대답해다. “맥길 왕가에서 가장 진심이 담긴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네 아버지가 옳은 선택을 했구나. 그랬지, 그분은 그랬었지…” 아르곤은 계속해서 공주를 바라보며 차츰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아르곤의 시선이 불편하긴 했지만 애써 그의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공주의 선택으로 인해, 공주의 희생으로 인해.” 아르곤이 말을 이었다. “운명이 공주의 염원에 귀를 기울였다. 토르는 오늘밤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공주의 혈육도. 공주 또한 살 것이다. 그러나 공주의 남은 수명 중 일부분은 사라지게 된다. 기억하거라, 늘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두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대신 공주가 살아갈 삶의 일부분이 죽게 된단다.” “그게 무슨 뜻이죠?” 공주가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지.” 아르곤이 대답했다. “공주는 선택을 내렸다. 그 선택을 다시 물리겠느냐?” 그웬 공주는 단단히 다짐했다. “토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어요.” 공주가 대답했다. “그리고 제 가족을 위해서도요.” 아르곤은 공주의 눈을 뚫어지도록 바라봤다. “토르는 대단한 운명을 타고 났단다.” 아르곤이 설명했다. “그러나 운명은 바뀌기도 하지. 우리의 운명은 별들과 같아. 그럼에도 운명은 신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지. 신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단다. 토르는 오늘밤 죽을 운명이었다. 공주가 아니었다면 토르는 오늘 죽었을 거야. 그리고 이를 막은 대가는 공주가 치르게 됐구나. 가혹한 대가지.” 공주는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공주가 아르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순간 눈앞에서 밝은 빛이 환하게 일어났고 그와 함께 예고도 없이 아르곤이 자취를 감췄다. 깜짝 놀란 그웬 공주는 호수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주변은 매우 고요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할 뿐이었다. 공주는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뒤 저 멀리 하늘을 바라봤다. 모든 것이 감사했다. 마침내 공주는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미래에 있을 끔직한 무언가를 마음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생각들을 애써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욱 그런 생각 속에 사로잡혔다. 과연 토르를 구하는 조건으로 공주가 치를 대가가 무엇이란 말인가? 제8장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 토르는 적군들에 짓눌리며 꼼짝도 못한 채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속수 무책으로 누워 있었고 동시에 주변으로 울리는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말들의 울음소리, 이곳 저곳에서 죽어나가는 병사들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어느덧 태양이 저물며 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름달이었다. 그 어느 때 본 보름달보다 크고 둥근 보름달이었다. 토르의 시야에 들어온 보름달은 거구의 적군이 토르의 눈 앞에 다가서자 시야가 가리워져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고 적군은 토르의 마지막을 장식할 기세로 삼지창을 들어올렸다. 토르는 죽음의 순간이 드리웠음을 깨달았다. 토르는 다가올 죽음을 맞이하며 눈을 감았다. 두렵지 않았다. 후회만 있을 뿐이었다. 토르는 좀 더 살고 싶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었고 자신의 운명이 무엇인지 밝히고 싶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그웬 공주와 오랫동안 함께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이렇게 죽는 게 억울했다.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죽어서는 안됐다. 토르는 느낄 수 있었다.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었다. 순간 토르는 몸 속에서 어떠한 힘이 발현되는 걸 느꼈다. 맹렬함이었다.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강력한 기운이었다. 새로운 힘이 발현되자 온 몸이 움찔거렸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발끝에서부터 다리, 허리 그리고 양 팔과 손끝까지 엄청난 에너지로 온몸이 타올랐고 알 수 없는 기운이 일어나며 빛을 발했다. 마치 땅 속에서 용이 승천하는 듯이 토르는 자신도 모르게 포효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토르는 자신을 붙잡고 짓누르는 적군들을 뿌리치며 바닥에서 일어났고 자신의 힘이 웬만한 병사 열 명보다 더 강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눈 앞에 선 적군은 삼지창을 내리 꽂았고 토르는 앞으로 다가가 그의 투구를 쥐고 박치기를 해 적군의 코를 부러뜨렸다. 토르가 적군을 다시 발로 힘껏 차버리자 적군은 마치 포탄처럼 저 멀리 날아가며 등 뒤로 적군의 병사들을 열 명이나 말에서 떨어뜨렸다. 토르는 기존에 느껴보지 못했던 분노를 느끼며 병사 한 명을 들어 올려 다른 병사들이 있는 곳에 힘껏 집어 던졌고 그때마다 상대편 병사들 수십 명이 볼링 핀처럼 다 함께 쓰러졌다. 토르는 다시 공격해오는 병사가 들고 있던 약 3미터 길이의 쇠사슬을 낚아채 머리 위로 쇠사슬을 돌리며 적들을 쓰러뜨렸다. 토르 주변으로 비명소리가 계속해서 일어났고 반경 3미터 내에 있던 수십 명의 병사들이 토르의 공격에 일제히 쓰러졌다. 몸 속에 흐르는 기운은 계속해서 강해졌고 토르는 뿜어 나오는 에너지를 거침없이 분출했다. 여러 명의 병사들이 토르를 향해 돌진하자 토르는 그들을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손바닥이 욱신거렸고 이내 토르이 손바닥에선 차가운 안개가 발산되기 시작했다. 돌진하던 병사들은 눈 앞에 펼쳐진 얼음 장벽 앞에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병사들은 얼음 장벽에 길이 막혀 그대로 그 자리에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다. 토르는 양 손을 뻗어 적군들을 향해 에너지를 발산했다. 그러자 적군들이 모두 얼음 속에 갇혀 버렸다. 마치 전쟁터 바로 위로 얼음이 내려앉은 듯한 형상이었다. 토르는 서둘러 부대원들을 살폈다. 때마침 상대편 병사들이 리스 왕자, 오코너, 엘덴, 쌍둥이들을 향해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토르는 손바닥을 펼쳐 적군들을 얼렸고 죽음의 위기에서 부대원들을 구했다. 부대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토르를 바라봤다. 토르를 향한 그들의 시선엔 안도감과 감사함이 담겨 있었다. 맥클라우드 병사들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토르를 더욱 경계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토르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거리를 뒀다. 수십 명의 병사들이 얼어붙은 모습에 저마다 토르에게 가까이 가기를 꺼렸다. 그러나 어디선가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웬만한 병사들보다 체구가 다섯 배는 커 보이는 한 병사가 토르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키가 4미터는 되어 보였고 토르가 지금껏 본 검들 중 가장 큰 검을 쥐고 있었다. 토르는 돌진하는 병사를 얼리기 위해 손바닥을 들었다. 그러나 그 병사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토르가 내뿜는 에너지가 마치 귀찮은 모기라도 되는 듯 손으로 토르의 에너지를 치워버리고 계속해서 토르에게 돌진했다. 토르는 자신의 힘이 아직 불완전 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왜 자신의 힘이 상대편 적군을 쓰러뜨리기에 부족한지 원인을 알 수 없어 당황했다. 거구의 적군은 순식간에 토르에게 달려왔다. 그의 엄청난 속도에 토르는 크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토르의 뒷덜미를 잡아 토르를 공중으로 집어 던졌다. 토르는 바닥에 세차게 떨어졌다. 게다가 몸을 일으킬 틈도 주지 않고 거구의 적군은 이미 토르의 몸 위에 올라타 있었다. 그는 양 손으로 토르를 들어올려 시선을 맞췄다. 이내 거구의 적군은 다시 토르를 공중으로 높이 집어 던졌고 맥클라우드 병사들은 이를 지켜보며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다. 토르는 그대로 60미터를 날아올라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갈비뼈가 부서지는 고통이 전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거구의 적군이 다시 토르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이제 토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토르에게 솟아나던 힘은 모두 소진 된 상태였다. 토르는 두 눈을 감았다. 부탁 드립니다, 신이시여, 도와주세요. 거구의 적군이 토르 위에 올라타자 토르는 마음 속에서 무언의 떨림이 계속해서 자라나는 걸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떨림은 토르의 몸 밖으로 나와 우주 전체에 퍼졌다. 토르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어느덧 스스로가 모든 사물과 조화되는 걸 느꼈다. 공기의 구조와 나무의 흔들림과 풀잎이 흔들리는 움직임까지 우주의 모든 것에 토르가 동화되어 있었다. 모든 사물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토르는 손을 뻗어 온 세계의, 우주의 모든 떨림을 불러 일으켰다. 감았던 두 눈을 뜬 토르의 귓가에 어마어마한 윙윙거림이 들렸다. 놀랍게도 토르의 손을 향해 거대한 벌떼가 곳곳에서 모여들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벌떼들은 계속해서 모여들었고 토르가 손을 더 높이 들자 벌떼들이 토르의 손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토르는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지 알 수 없었지만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벌떼를 조종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토르는 거구의 적군을 향해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엄청난 벌떼들이 하늘을 덮으며 어둠이 일었고 순식간에 모든 벌떼들이 거구의 적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구의 적군은 양 손을 머리위로 들어 올리며 벌떼들을 휘저었다. 엄청난 벌떼들이 그에게 계속해서 달려들었고 쉬지 않고 벌침을 쏘아댔다. 수천만 마리의 벌에 쏘인 거구의 적군은 결국,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바닥에 얼굴을 떨구고 죽어버렸다. 그가 바닥에 쓰러지자 주변이 크게 울렸다. 토르는 다시 말에 올라 놀란 모습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맥클라우드 병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병사들이 일제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토르가 그들을 향해 손을 뻗자 엄청난 벌떼들이 일제히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맥클라우드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수도 없이 쏘아대는 벌떼의 공격을 맞으며 도망갔다. 맥클라우드 병사들이 번개처럼 허겁지겁 도망가자 전쟁터는 순식간에 비어지고 있었다. 일부 병사들은 도망가지 못하고 벌떼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바닥 위에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계속해서 도망갔고 벌떼들을 그들을 공격하며 계속해서 따라갔다. 엄청난 윙윙 소리가 지평선 너머로 도망치는 군대의 말발굽 소리와 벌에 쏘인 병사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어우러졌다. 토르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단 몇 분만에 전쟁터의 병사들이 사라져버렸다. 남아있는 병사들이라고는 시체로 남은 병사들과 부상을 입고 죽어가는 병사들뿐이었다. 토르는 고개를 돌려 친구들을 살폈다.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 거친 숨을 내뿜고 있었다. 부대원들은 하나같이 온 몸에 멍이 들고 이리저리 가벼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생명에 지장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토르와 안면이 없던 부대원 3명은 바닥에 누워 시체가 되어 있었다. 저 멀리서 우르릉거리는 거대한 소리가 일어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맥길 왕가의 군대가 언덕을 오르며 토르 일행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선두에는 캔드릭 왕자가 보였다. 토르 일행을 구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군대는 순식간에 토르와 부대원들 앞에 멈춰 섰다. 전쟁을 뒤로하고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들 앞에 맥길 왕가의 군대가 달려왔다. 토르는 놀란 눈으로 말에서 내려 토를 향해 달려오는 캔드릭 왕자와 콜크 사령관과 브롬 총 사령관을 바라봤다. 이들 뒤로는 왕실의 명예로운 실버 전사들이 함께였고 모두 말에서 내려 토르에게 다가왔다. 모두가 일제히 유혈 사태가 벌어진 전쟁을 치른 뒤 승리를 거머쥔 토르 일행을 바라봤다. 부대원들 뒤로 수백 명의 맥클라우드 병사들의 시체가 널브러진 모습에 모두가 의아한 모습이었다. 토르는 그들의 눈빛에서 궁금증과 경외감과 존경심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의 눈빛 속에 담겨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한 평생 토르가 꿈꿔왔던 것이었다. 토르는 영웅이 되어 있었다. 제 9장 에레크 명장은 남쪽 길을 따라 말을 타고 달렸다. 명장은 전 속력으로 말을 달리며 어둠 속에서 말이 웅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알리스테어가 노예상에게 팔려가 발러스터로 끌려간다는 소식을 접한 뒤로 쉬지 않고 달리는 중이었다. 명장은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여관 주인을 믿었던 자신이 너무 어리석고 순진했다. 여관 주인이 약속을 어길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도 못했다. 명장이 마상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나면 약속대로 알리스테어에게 자유를 줄 거라 생각했다. 언제나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다해온 명장이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도 자신의 말을 지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바보 같은 착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명장의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를 그가 아닌 알리스테어가 치르고 있었다. 그녀를 생각하자 에레크 명장은 구멍이 뚫린 듯 가슴이 아파왔다. 명장은 더욱 힘차게 말을 달렸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고귀한 여인이 여관에서 일하는 불명예를 겪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노예상에게 성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생각만으로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에 대한 책임이 바로 스스로에게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자신이 그녀의 인생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를 데려가겠다고 여관 주인에게 제안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여관 주인은 이 모든 일을 벌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깊은 밤 에레크 명장은 알리스테어를 찾아 빠르게 질주했다. 말이 질주하며 일으키는 말발굽 소리와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며 달리는 말의 호흡소리가 명장의 귓가에 가득 울렸다. 말 또한 명장처럼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명장도 힘에 부쳐 말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명장은 마상 경기 직후 한시도 쉬지 않고 바로 여관으로 향했고 이제는 더 이상 지칠 수도 없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더 이상의 기력이 남아있지 않아 달리는 말 위에 고삐를 붙들고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명장은 서서히 감기는 눈을 애써 부릅뜨며, 잠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명장은 보름달 쏟아지는 달빛을 흠뻑 받으며 발러스터가 있는 남쪽으로 질주했다. 에레크 명장은 어린 시절부터 발러스터라는 곳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비록 한번도 직접 방문한 적은 없었지만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곳은 도박과 마약과 성 매매 등 왕국의 온갖 부도덕한 일들이 팽배하게 이뤄지는 곳이었다. 그곳은 링 대륙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알려진 모든 종류의 어두운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여드는 곳이었다. 그곳은 에레크 명장의 성품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명장은 한번도 도박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고 술에 취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 대신, 여유가 생길 때면 언제나 훈련에 매진하여 전사로서의 기질을 갈고 닦았다. 명장으로서는 발러스터를 찾아가는 유형의 사람들처럼 그렇게 나태하게 삶을 보내고 환락을 품는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발러스터에 가는 것 자체가 불길한 징조였다. 그곳에서 좋은 일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런 곳으로 향하는 알리스테어 생각에 명장은 가슴이 메어졌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구해야 했다. 발러스터에서 무슨 일이라도 당하기 전에 속히 그녀를 그곳에서 빼내와야 했다. 달은 점차 기울어졌고 어느새 달리던 길이 넓어지기 시작하며 말을 달리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에레크 명장은 눈 앞에 펼쳐진 도시를 바라봤다. 수도 없이 많은 횃불이 벽에 걸린 모습이 마치 도시 전체가 어둠 속을 밝히는 모닥불처럼 보였다. 예상했던 모습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발러스터에 머무는 사람들은 밤새 향락에 빠져 잠을 자지 않는다고 했다. 명장은 더욱 박차를 가해 달렸고 눈 앞의 도시가 더욱 가까워지며 마침내 작은 목재 다리를 건넜다. 다리의 양 옆으로 횃불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고 다리를 지키는 보초는 잠에 취해 꾸뻑거렸다. 에레크 명장이 번개처럼 다리를 건너가자 졸던 보초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 몸을 일으켰다. 보초는 에레크 명장을 불러 세우기 위해 소리쳤다. “이봐!” 그러나 명장은 멈추기는커녕 속도를 줄이지도 않았다. 보초가 용기를 내 에레크 명장을 쫓아올 일도 없었을 테지만 만약 그랬다면 에레크 명장은 자신의 길을 막는 보초를 죽일 생각이었다. 명장은 계속해서 달려 도시로 진입하는 입구에 들어섰다. 입구는 사각형 모양을 띠고 있었고 가장자리는 고대의 석조 벽면으로 이뤄져 있었다. 명장은 그대로 입구를 지나 좁게 난 길가로 들어섰다. 길의 양 옆으로 횃불이 늘어서 어둠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도시 내부에 빽빽이 줄지어 선 건물들 덕분에 도시 내부는 좁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거리 위의 사람들은 모두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서로 몸을 부딪혔다. 거대한 파티가 벌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건물마다 여관과 도박장이 보였다. 에레크 명장은 제대로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알리스테어가 이곳 어딘가에 있다는 걸 확신했다. 명장은 자신이 너무 늦게 도착한 게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침을 삼켰다. 명장은 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남다르게 큰 규모를 자랑하는 여관 앞까지 말을 타고 달렸다. 여관 앞에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모여있었다. 명장은 이곳부터 수색해보는 게 좋겠다고 결정했다. 그는 말에서 내려 서둘러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술에 취해 소란을 떠는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여관 주인을 찾았다. 여관 주인은 실내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그들에게서 돈을 받은 뒤 그들은 방으로 안내했다. 그러던 중 에레크 명장과 눈이 마주친 여관 주인은 명장에게 인위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방을 드릴까요, 손님?” 여관 주인이 물었다. “아니면 찾는 계집이 있으신가요?” 명장은 고개를 저으며 소란 속에서 여관 주인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여관 주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사람을 찾고 있네.” 명장이 대답했다. “노예상이오. 그자는 사바리아에서 이곳으로 왔네. 아마 이곳에 온지 하루 정도 됐을 거네. 값 나가는 화물을 가지고 왔네. 노예들을 태운.” 여관 주인은 입술을 핥았다. “손님께서 원하시는 건 아주 귀한 정보입니다.” 여관 주인이 답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어요. 방을 제공하는 것만큼 제겐 쉬운 일이죠.” 여관 주인은 앞으로 바짝 다가와 손가락을 비비며 명장 앞에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는 명장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입가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에레크 명장은 여관 주인이 역겨웠지만 정보를 얻어야 했다. 또한 일분 일초를 지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주머니에 손을 넣어 커다란 금화를 꺼내 여관 주인에게 건넸다. 금화를 이리저리 살피던 여관 주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왕의 금화군요.” 여관 주인이 여전히 금화를 살피며 감탄을 자아냈다. 여관 주인은 호기심과 존경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명장을 위아래로 살폈다. “그럼 왕실에서 여기까지 말을 타고 달려오신 건가요?” 여관 주인이 물었다. “질문은 됐네.” 에레크 명장이 대답했다. “질문은 내가 했네. 그리고 대가도 치렀네. 이제 대답해보게. 노예상은 어디 있나?” 여관 주인은 입술을 여러 번 핥더니 명장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 사람은 엘봇이라고 합니다. 이 도시에 새로운 창녀들을 데리고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하지요. 창녀들을 경매에 붙여 가장 높은 값을 부르는 사람에게 팔아버립니다. 놈의 소굴로 가면 놈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이 길이 끝날 때까지 쭉 따라가면 그곳에 놈의 영업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찾는 계집이 꽤 괜찮은 계집이라면, 아마도 벌써 팔리고 없을 겁니다. 엘봇이 데려오는 창녀들은 모두 금새 팔려버리니까요.” 에레크 명장이 서둘러 자리를 뜨려는 순간, 기분 나쁘게 축축한 손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놀랍게도 여관 주인이 겁도 없이 명장을 잡아 세우고 있었다. “만약 창녀를 찾으시는 거라면, 제가 데리고 있는 애들은 어떠십니까? 여기 계집들도 그가 데리고 오는 계집만큼 훌륭합니다. 그러나 가격은 절반에 불과하죠.” 에레크 명장은 여관주인이 역겨웠다. 만약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여관 주인을 죽여 없애버렸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악한 자를 한 명이라도 더 제거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명장은 스스로를 다그쳤다. 여관 주인은 그런 수고조차 필요 없는 인간이었다. 에레크 명장은 자신을 잡은 여관 주인의 손을 뿌리치고 그에게 가까이 고개를 기울였다. “다시 한번 내게 손을 대면,” 에레크 명장이 경고했다. “그럼, 그 행동을 후회하게 해주겠다. 알겠으면 뒤로 두 걸을 물러서라. 내가 이곳에서 내 손에 들린 이 검을 휘두르기 전에.” 여관 주인은 흠칫 놀라 공포에 젖은 눈빛으로 고개를 풀 숙이고 서둘러 뒷걸음질 쳤다. 에레스 명장은 지체 없이 그곳을 빠져 나왔다. 앞을 막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밖으로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역겨움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명장은 술 취한 주정쟁이들이 이리저리 옆을 기웃거리며 탐을 내고 있던 자신의 말에 달려가 올라탔다. 의심의 여지 없이 주정쟁이들이 자신의 말을 훔치려고 했던 게 분명했다. 만약 그들이 말을 훔쳐가 말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 지를 생각하니 끔찍했다. 명장은 앞으로는 말을 더욱 단단히 메어둬야겠다고 다짐했다. 에레크 명장은 범죄와 부패가 팽배한 이 도시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명장의 애마, 와크핀은 훌륭한 군마였다. 누구든지 와크핀에게 접근해 데려가려 한다면 와크핀이 그 자리에서 그 자를 밟아 죽일 거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에레크 명장은 와크핀에게 힘껏 발길질을 했고 명장과 와크핀은 좁은 길을 따라 달려 나갔다. 명장은 북적 이는 인파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렸다. 아주 늦은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거리에는 더욱 많은 인파가 모여들며 서로 몸을 부대끼고 있었다. 명장이 빠르게 달려나가자 몇몇 주정쟁이들이 명장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명장은 개의치 않았다. 알리스테어가 근방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녀를 되찾기 전까지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마침내 석조 벽이 길 앞을 가로막으며 막다른 골목임을 알렸다. 오른쪽에 위치한 가장 마지막 건물은 기울어진 여관이었다. 하얀 벽토가 발린 건물에 초가 지붕을 이고 있는 한물간 건물이었다. 그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관찰한 명장은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말에서 내린 명장은 말뚝에 단단히 말을 고정시킨 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눈앞의 모습에 놀라 이내 가던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내부는 아주 어두웠다. 커다란 방에는 꺼져가는 횃불 몇 개만이 어둠을 겨우 밝히고 있었고 저 멀리 한쪽 구석에는 불이 제대로 붙지 않은 벽난로가 켜져 있었다. 곳곳에 깔린 이불 위에는 수 많은 여자들이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도 못한 채 두꺼운 밧줄에 몸이 묶여 벽에 고정돼 있었다. 여자들이 모두 약에 취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부는 아편 냄새가 진동을 했고 이곳 저곳에서 아편을 피운 파이프가 서로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고급스럽게 옷을 차려있은 남자 몇 명이 방안을 돌아다니며 이불 위에 널브러진 여자들의 다리를 발로 툭툭 건드려봤다. 마치 어떤 물건을 살지 물건을 고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쪽 구석에는 작은 붉은색 벨벳 의자 위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명주 가운을 두른 그는 양 옆으로 여자들을 사슬에 묶어 대동하고 있었고 그의 뒤로는 엄청난 거구의 근육질을 자랑하는 사내들이 있었다. 사내들의 얼굴에는 흉터가 가득했고 모두가 에레크 명장보다 키가 크고 체격이 컸으며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해치우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모든 광경을 살핀 에레크 명장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바로 짐작했다. 다름 아닌 성 매매 장소였다. 이곳에 있는 여자들은 자신을 사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저 구석에 앉아있는 남자가 바로 알리스테어를 데려간 우두머리인 게 분명했다. 아마도 그는 알리스테어 외에도 여기 있는 모든 여자들을 강제로 끌고 왔을 것이다. 어쩌면 알리스테어가 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명장은 서둘러 여자들이 늘어선 방 안을 둘러보며 여자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방 안에는 수실명의 여자들이 있었고 그 중 일부는 정신을 잃은 듯 보였다. 방 안이 너무 어두워 얼굴을 식별하기가 힘들었다. 명장은 통로를 따라가며 한 사람씩 얼굴을 살폈다. 순간 누군가가 손바닥으로 명장의 가슴을 쳤다. “돈은 냈소?” 거친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거구의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명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자를 구경하고 싶으면, 돈을 내시오.” 사내는 중 저음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의 규칙이오.” 명장은 분노가 솟구쳤다. 거구의 사내가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명장은 어느새 손 끝으로 사내의 목젖을 가격했다. 사내는 헉 하는 소리를 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 않아 양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명장은 앞으로 다가가 팔꿈치로 사내의 관자놀이를 가격했고 사내는 그대로 얼굴을 바닥에 떨구며 기절했다. 명장은 다시 방안에 있는 여자들의 얼굴을 살피며 간절하게 알리스테어를 찾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그녀의 얼굴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알리스테어는 이곳에 없었다. 에레크 명장은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한쪽 구석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우두머리를 향해 서둘러 다가갔다. “맘에 드는 계집을 찾으셨나요?” 우두머리가 물었다. “돈을 걸만 한 물건을요?” “난 한 아가씨를 찾고 있네.” 명장이 강철같이 차갑고 단호한 어조로 애써 화를 누르며 말했다. “그리고 난 같을 말을 두 번 하지 않을 것이네. 그 여인은 키가 크고 긴 금발머리에 청록 빛 눈동자를 지녔네. 이름은 알리스테어. 하루나 이틀 전에 사라비아에서 이곳으로 끌려왔네. 그 여인이 이곳으로 끌려왔다고 들었네. 사실인가?” 우두머리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씩 미소를 지었다. “죄송하지만 손님께서 찾으시는 물건은 이미 팔려갔습니다.” 우두머리가 대답했다. “아주 훌륭한 물건이었죠. 취향이 고상하시네요. 다른 물건을 한번 찾아보시죠. 조금 깎아드리겠습니다.” 에레크 명장은 그간 느껴보지 못했던 분노가 솟구치는 걸 느꼈다. “누가 그 여인을 데려갔나?” 명장이 무섭게 다그쳤다. 우두머리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그 노예한테 꽂히셨군요.” “그 여인은 노예가 아니네.” 에레크 명장이 역정을 냈다. “그녀는 내 부인이네.” 우두머리는 놀란듯한 눈으로 에레크 명장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젖히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손님 부인이라니! 농담도 잘하시네요. 그렇지만 더 이상은 아니죠, 손님. 이제 그 물건은 다른 사람의 장난감이 됐습니다.” 우두머리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둡게 변했다. 얼굴을 찌푸린 그의 모습은 마치 악마 같았다. 그는 뒤에 서있는 두 사내들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이제 이 쓰레기 같은 자식 좀 치워버려.” 근육이 우락부락한 두 사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에레크 명장 앞에 나타났다. 명장은 두 거구의 민첩함에 흠칫 놀랐다. 두 사내는 명장을 제압하기 위해 손을 뻗어 명장의 멱살을 잡으려 달려들었다. 그러나 두 사내는 자신들이 누구에게 덤비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명장은 두 사람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민첩했다. 명장은 재빨리 옆으로 비켜 뒤에서 한 사내의 손목을 잡아 뒤로 비틀었다. 사내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명장은 동시에 팔꿈치로 다른 사내의 목을 가격했다. 명장은 앞으로 몸을 돌려 바닥에 누워있는 사내의 코를 가격해 코뼈를 으스러트렸다. 코뼈가 부서진 사내는 정신을 잃고 목을 붙잡고 바닥에 드러누운 다른 사내 위에 쓰러졌다. 두 사내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에레크 명장은 사내들을 밟으며 우두머리에게 가까지 다가갔다.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우두머리는 두려움에 떨며 앉은 자리에서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명장은 허리를 숙여 우두머리에게 가까이 다가가 주먹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쥐고 다른 손으로 단검을 꺼내 그의 목에 겨눴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 말하거라. 그럼 살려줄 수도 있다.” 에레크 명장이 노여움을 토했다. 우두머리는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말해요, 할게요. 그렇지만 다 시간 낭비입니다.” 우두머리가 입을 열었다. “귀족에게 팔았어요. 그분은 군대를 가지고 있고 궁전에 살아요. 엄청난 권력가에요. 그분의 궁전은 한번도 침략당한 적이 없어요. 더군다나 그분은 엄청난 병력을 가졌죠. 어마어마한 부자에요. 그분 주변에는 언제든지 목숨을 걸 용병들이 있다고요. 그분은 직접 거래한 계집을 모두 데리고 있어요. 손님의 부인을 거기서 데려오는 건 불가능한 입입니다. 그러니 그냥 왔던 곳으로 돌아가세요. 그녀는 이제 없습니다.” 명장은 단검을 더욱 세게 들이밀었고 우두머리의 목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우두머리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귀족은 어디 있는가?” 이성을 잃은 에레크 명장이 다그쳤다. “그분의 궁전은 서쪽 마을에 있습니다. 도시의 서쪽 출입구를 지나 길이 끝날 때까지 쭉 따라가세요. 그럼 궁전이 보일 겁니다. 그러나 다 헛수고에요. 그분은 그 여자에게 엄청난 가격을 지불했습니다. 제가 부른 값보다 훨씬 비싼 값에 데려갔습니다.” 에레크 명장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우두머리의 목을 베어 그를 죽였다. 그러자 그의 몸이 의자 위로 축 늘어지며 사방으로 피가 분출했다. 명장은 죽은 우두머리를 바라본 뒤 다시 그의 두 심복들을 바라봤다. 이 곳이 역겨워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가 않았다. 에레크 명장은 방 안을 가로질러 여자들을 묶어둔 두꺼운 밧줄을 끊어버리고 잡혀온 여자들을 모두 풀어줬다. 사방에서 묶여있던 여자들이 재빨리 몸을 일으켜 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이내 방 안은 아수라장이 됐다. 모두가 서둘러 도망가기 위해 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몇몇 여자들은 약에 취해 움직이질 못했고 다른 여자들이 그들을 부축했다. “당신이 누구시든.” 한 여자가 문 앞에 서서 에레크 명장에게 말을 건넸다.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빌겠습니다. 어디를 가시던지, 신의 가호가 함께할 것입니다.” 에레크 명장은 그녀의 기도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의 말대로 명장은 앞으로 가야 할 곳에서 반드시 신의 가호가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었다. 제 10장 새벽이 밝아왔다. 일레프라가 사는 오두막의 작은 창문 틈으로 들어온 새벽 빛이 그웬돌린 공주의 감은 두 눈을 비추며 공주를 잠에서 깨우고 있었다. 첫 번째 태양이 소리 없이 주황빛 빛을 뿜으며 공주를 어루만졌고, 고용한 새벽녘 공주의 잠을 쫓아냈다. 공주는 졸린 눈을 깜빡이며 잠에서 깨어났다. 자신이 잠든 곳이 어딘지 주변을 둘러봤고 그제서야 다시 걱정이 몰려왔다. 고드프리 오빠. 그웬 공주는 고드프리 왕자가 누워있는 침대 옆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일레프라는 고드프리 왕자의 바로 곁에서 그를 간호하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세 사람은 아주 긴 밤을 보냈다. 밤새 고드프리 왕자는 신음을 토하며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고 일레프라는 그런 왕자의 곁에서 쉴새 없이 왕자를 간호했다. 공주 또한 고드프리 왕자의 곁을 지키며 뭐든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수건을 적셔 고드프리 왕자의 이마를 덮어줬고 수건이 뜨거워지면 다시 수건을 차갑게 갈아줬다. 또한 일레프라가 시키는 대로 약초와 연고를 계속해서 찾아다 줬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밤이었다. 고드프리 왕자는 몇 번이고 비명을 질렀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이따금씩 아버지를 불러대는 고드프리 왕자의 모습에 공주는 등골이 오싹했다. 마치 아버지께서 이곳에 함께 계시는 것 같았다. 세 사람의 곁을 아버지께서 함께 지켜주시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늘 긴장감이 팽배했던 관계 속에서 줄다리기를 버리던 두 사람이었기에 공주는 아버지가 고드프리 오빠의 죽음을 원하는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공주가 이곳에서 잠을 청한 이유는 딱히 갈 곳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왕실로 돌아가기엔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 개리스 왕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게 불안했다. 공주는 오히려 이곳이 안전했다. 일레프라의 곁에서 아코드와 펄톤이 보초를 서는 이곳이 공주에겐 더욱 안전했다. 아무도 공주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를 거라 짐작했고 공주는 그 편이 마음이 놓였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 더욱 가까워지며 그 동안 알지 못했던 고드프리 왕자의 새로운 모습을 본 공주로서는 고드프리 왕자가 죽어간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지가 않았다. 공주는 서둘러 몸을 일으켜 고드프리 왕자 곁에 다가갔다. 밤새 무사했는지 확인하려니 공주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가 만약 어젯밤을 잘 넘겼으면 이제는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젯밤이 고비였다고 생각했다. 일레프라도 잠에서 깨 고드프리 왕자를 살폈다. 밤새 고드프리 왕자를 간호하다 잠이 든 그녀였다. 그웬 공주는 그녀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리쬐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환해진 오두막 안에서 두 사람은 고드프리 왕자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공주는 고드프리 왕자의 손목을 잡고 살며시 흔들었고 일레프라는 손바닥으로 왕자의 이마를 짚었다. 일레스파는 두 눈을 감고 숨을 쉬었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고드프리 왕자가 감고 있던 두 눈을 크게 떴다. 일레프라는 깜짝 놀라 왕자를 짚고 있던 손바닥을 황급히 뗐다. 공주 또한 놀랐다. 고드프리 왕자가 이렇게 빨리 눈을 뜰 줄은 몰랐다. 왕자는 고개를 돌려 공주를 바라봤다. “고드프리 오빠?” 공주가 말을 걸었다. 고드프리 왕자는 눈을 찌푸리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내 다시 눈을 크게 뜨더니 놀랍게도 양 팔로 침대를 짚고 몸을 일으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지금이 몇 시지?” 왕자가 다급히 물었다. “여기가 어디야?” 왕자의 목소리는 생기가 가득했다. 놀랍도록 건강해 보였다. 공주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안도하며 일레프라와 함께 이제서야 활짝 웃었다. 그웬 공주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고드프리 왕자를 꼭 끌어안았다. “오빠 살아있어요!” 공주가 감격했다. “물론 살아있지.” 왕자가 대답했다. “내가 왜 안 살아있겠어? 이 사람은 누구야?” 왕자가 일레프라를 보며 말했다. “오빠의 생명을 구해준 분이죠.” 그웬 공주가 대답했다. “내 생명을 구했다고?” 일레프라는 시선을 바닥으로 향했다. “저는 그저 작은 도움을 드렸을 뿐입니다.” 일레프라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고드프리 왕자가 놀란 눈으로 공주에게 물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술집에서 술을 마신 거고, 그리고…” “음독을 하셨습니다.” 일레프라가 설명했다. “아주 진귀하고 강력한 독이었어요. 누군가 왕자님을 없애려고 한 게 분명합니다.” 공주는 일레프라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내 공주의 머릿속에 독주를 마실뻔했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햇빛이 더욱 강렬하게 창문을 비췄다. 공주는 아버지께서 이곳에 함께 계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고드프리 왕자가 살아나길 바라셨던 게 분명했다. “독을 제대로 마신 거죠.” 그웬 공주가 덧붙였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맹세했었잖아요. 오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세요.” 고드프리 왕자가 멋쩍은 듯 고개를 돌려 공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생생하게 살아난 고드프리 왕자를 본 공주는 다시 한번 크게 안도했다. 고드프리 왕자가 살아났다. “네가 내 목숨을 구했어.” 고드프리 왕자가 공주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왕자는 다시 일레프라를 바라봤다. “두 사람 모두.” 왕자가 말을 이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 일레프라를 바라보는 고드프리 왕자의 눈빛에서 그웬 공주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고드프리 왕자의 표정이 평소와는 달랐다. 더욱 큰 감사의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공주는 고개를 돌려 일레프라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고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공주는 두 사람이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일레프라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가로질러 두 사람을 등진 채 약물을 챙겼다. 고드프리 왕자는 다시 그웬 공주에게 시선을 옮겼다. “개리스?” 왕자가 엄숙하게 물었다. 고드프리 왕자가 무얼 궁금해하는지 잘 알고 있는 공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빤 천만다행으로 살아났어요.” 공주가 입을 열었다. “펄스는 죽었어요.” “펄스?” 깜짝 놀란 고드프리 왕자의 언성이 높아졌나. “죽어? 어떻게?” “교수대에서 참형 당했어요.” 공주가 대답했다. “그 다음은 오빠 차례였고요.” “그럼 넌?” 고드프리 왕자가 물었다. 공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개리스 왕은 저를 먼 곳으로 혼인시킬 계획이에요. 절 네바런스 족에 팔았어요. 아마도 지금 네바런스 족들이 절 데리러 이곳으로 오고 있을 거에요.” 고드프리 왕자는 화를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내가 절대 두고만 보고 있진 않을 거야.” 왕자가 소리쳤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공주가 동조했다. “방법을 찾아야죠.” “그렇지만 펄스가 없으면 증거를 댈 수가 없어.” 왕자가 말을 이었다. “개리스를 끌어내릴 방법이 없어. 개리스는 이제 증거가 없으니 죄값을 치르지 않게 될 거야.” “우리가 방법을 찾아야 해요.” 공주가 대답했다. “우리는 방법을 찾을—” 순간 오두만 문이 열리며 햇빛이 오두막 안을 훤히 비췄고 열린 문으로 아코드와 펄톤이 들어왔다. “공주님—” 아코드가 공주에게 말을 걸다 말고 고개를 돌려 고드프리 왕자를 바라봤다. “이 나쁜 자식!” 아코드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고드프리 왕자를 바라봤다. “이럴 줄 알았어! 죽을 것처럼 날 속였던 거야, 죽을 것처럼 절 속인 거였죠!” “전 그저 술 한잔으로 왕자님이 골로 가진 않을 거라 믿었어요!” 펄톤도 기쁜 듯 농담을 뱉었다. 아코드와 펄톤은 왕자에게 달려가 펄쩍 뛰어올라 왕자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아코드는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그웬 공주에게 말을 이었다. “공주님, 갑자기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저 멀리서 다가오는 병사들을 목격했습니다. 지금도 그 병사들이 이곳을 향해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습니다.” 그웬 공주는 심각한 모습으로 밖으로 달려나갔다. 다른 사람들도 공주를 쫓아 나와 언덕 위에서 내리쬐는 태양에 손으로 눈을 가리며 저 멀리 내다봤다. 공주는 저 멀리에서 실버 전사들 몇 명이 오두막을 향해 오는 모습을 바라봤다. 여섯 명의 전사들이 전속력으로 말을 달렸고 누가 봐도 오두막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고드프리 왕자가 서둘러 검을 빼기 위해 손을 뻗자 공주가 그의 팔을 막으며 안심시켰다. “개리스 왕이 보낸 병사들이 아니에요. 캔드릭 오빠의 병사들이에요. 분명 우릴 위협하지 않을 거에요.” 병사들이 그들 앞에 모습을 보였고 달려온 병사들은 지체 없이 말에서 내려 그웬돌린 공주 앞에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공주님.” 대표로 보이는 병사가 입을 열었다. “희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저희 군대가 맥클라우드 군대를 몰아냈습니다! 공주님의 오빠, 캔드릭 왕자님은 안전합니다. 왕자님께서 공주님께 다음 소식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토르는 안전하다.” 그웬 공주는 병사의 말에 눈물을 흘렸다. 감사함과 안도감에 휩싸인 공주는 벅찬 마음으로 고드프리 왕자를 끌어안았다. 왕자도 눈물을 흘리는 공주를 다독여줬다. 공주는 이제서야 자신의 삶을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군대는 모두 오늘 돌아옵니다.” 병사가 말을 이었다. “왕실에서 거대한 축하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공주님.” 깊은 목소리의 전사가 공주에게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귀족이자 명망 높은 전사, 스로그였다. 그는 다른 병사들과 달리 맥길 왕국의 서부 지역을 상징하는 붉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공주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스로그는 아버지와 사이가 각별했던 귀족이었다. 그는 공주 앞에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고 그런 그의 모습에 공주는 어쩔 줄 몰랐다. “이러지 마세요, 주군.” 공주가 그를 만류했다. “제게 예를 갖추실 필요는 없습니다.” 스로그는 수천 명의 군사들을 통솔하는 명망 높고 힘있는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서부 지역에 위치한 도시, 실레시아를 통치하는 귀족이었다. 실레시아는 서부 지역의 독특한 도시로써 캐니언 협곡 바로 밑으로 자리잡은 도시였다. 실레시아는 그 어느 군대로도 뚫을 수 없는 도시였다. 그런 도시를 책임지는 스로그는 선대 맥길 왕이 생전에 크게 신뢰했던 귀족이었다. “저는 이 병사들과 함께 이 곳에 달려왔습니다. 왕실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스로그는 이미 모든 사실을 접한 듯 공주에게 설명했다. “왕좌가 불안정합니다. 새로운 지도자, 단단하고 진실된 지도자가 왕좌에 앉아야 합니다. 선대 폐하께서 생전에 공주님을 후계자로 삼으셨다는 얘기가 제게도 전해졌습니다. 선대 폐하께서는 제게 혈육과도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선대 폐하의 뜻은 제게 절대적인 힘을 가집니다. 저는 공주님께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온 것입니다. 공주님께서 왕국을 통치하시면, 저와 저의 병사들은 공주님께 충성을 바칠 것입니다. 공주님께서 하루속히 결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사태가 바로 왕국에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걸 반증하고 있습니다.” 그웬 공주는 황당함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공주는 스로그 귀족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의 행동 덕에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왕위 계승이란 말에는 부담감이 밀려왔다. “진심으로 그 마음이 감사합니다, 주군” 공주가 대답했다. “주군의 충정과 제안이 황송할 따름입니다. 심사 숙고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병사들과 토르를 환영하는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스로그는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때마침 저 멀리서 경적 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들어 내다보니 벌써 눈 앞에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었고 그 사이로 군대의 행렬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공주는 한 손을 들어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피해 눈을 가렸다. 이렇게 먼 곳에서도 군대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군대의 행렬의 중심에 선 인물은 다름아닌 토르였다. 제 11장 토르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왕실로 향하는 수천 명의 병사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렸다. 여전히 한 편으로는 어안이 벙벙했다. 토르는 전쟁 속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뿌듯했다. 패전의 위기 앞에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적군들을 마주한 자신이 대견했다. 또한 그런 전쟁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전쟁이 모두 꿈처럼 지나간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자신의 힘을 불러낼 수 있었던 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토르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힘이 때때로 소용 없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 수 없는 힘이었다. 더군다나 그 힘이 어디서 소환되는지도 알 수 없었고 어떻게 발산해내는지도 의문일 뿐이었다. 그런 연유에서 최고의 전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알 수 없는 힘에 의지하기 보단 다른 전사들처럼 끊임없을 훈련을 거듭해야 되겠다고 다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진정 최고의 전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전사로서, 또 마법사로서 발휘하는 두 가지 힘이 모두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군대는 하루 종일 말을 타고 왕실로 달렸다. 토르는 기쁨에 취해 날아갈 것 같으면서도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첫 번째 태양이 하늘 위로 떠올랐고 넓은 창공이 노란 빛과 분홍 빛을 발하며 끝도 없이 펼쳐졌다. 마치 처음으로 세상을 접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토르 주변으로는 리스 왕자, 오코너, 엘덴, 쌍둥이들이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그 옆으로 캔드릭 왕자와 콜크 사령관 그리고 브롬 총사령관이 수백 명의 부대원들, 실버 전사들, 왕의 병사들을 이끌며 함께 달렸다. 토르는 군대의 가장자리가 아닌, 주요 사령관들 한가운데에서 말을 타고 달렸다. 전쟁 이후 모두가 토르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제는 부대원들뿐만이 아니라 노련한 전사들까지도 토르를 인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토르는 맥클라우드의 모든 병사들을 홀로 맞서 상대했고 패전의 위기에서 승전 보를 울렸다. 토르는 부대원 친구들이 모두 살아있다는 사실에 크게 기뻤다. 친구들이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러나 그 기쁨이 큰 만큼 함께했던 세 명의 안면이 없던 부대원들의 죽음에 대한 상심도 클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들을 구하지 못한 데 죄책감을 느꼈다. 온통 피로 범벅 됐던 맹렬한 전투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눈을 깜빡일 때마다 자신에게 달려들던 적군들의 모습과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갖가지 무기들이 떠올랐다. 맥클라우드 병사들은 잔인했고 그들을 대면하고도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이 행운이었다. 또다시 그들을 대면하게 되면 토르에게 어제와 같은 행운이 따를지는 의문이었다. 언제 다시 자신에게 내제된 알 수 없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알 길이 없었다. 다시 그런 힘이 발휘 될지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토르는 답이 필요했다. 또한 자신의 어머니도 찾아야 했다.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밝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아르곤을 만나야 했다. 크론이 토르 곁에서 울부짖었다. 토르는 허리를 숙여 크론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크론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하듯 토르의 손을 핥았다. 다행히 크론이 전쟁에서 목숨을 건져 토르는 크게 안도했다. 토르는 전쟁이 끝난 뒤 크론을 안아 자신의 말 뒤에 실었다. 크론은 걸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토르는 크론의 몸을 쉬게 하고 오랜 여정의 피로를 풀게 하고 싶었다. 크론은 적군에 공격에 큰 타격을 받았다. 토르가 보기에 크론의 갈비뼈가 부서진 것 같았다. 토르는 크론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크론은 토르에게 동물이라기 보다는 형제 같았다. 자신을 몇 번이고 구해준 크론이 너무나도 감사한 존재였다. 눈 앞에 펼쳐진 길을 따라 언덕의 정상을 넘으니 발 밑으로 영광에 빛나는 왕실의 모습이 펼쳐졌다. 수십 개의 탑과 첨탑이 우뚝 솟아 있고, 고대의 석조 벽과 교각이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낸, 아치형의 출입구가 곳곳마다 입구를 지키고 옥상과 길목마다 수백 명의 근위대가 보초를 서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농지가 늘어서있고 그 모든 중심부로 왕실이 위치한 장대한 경관이 펼쳐졌다. 그 모습에 토르는 즉각적으로 그웬 공주를 떠올렸다. 공주야말로 토르가 전쟁을 버틸 수 있는 원천이었고 자신의 삶의 이유였다. 자신이 함정에 빠져 적군들에게 매복 당했을 때 토르는 공주의 운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주가 왕실에서 안전하길 바랬다. 자신이 겪는 이 모든 배반적인 기운이 공주에게까지 손길을 뻗지 않기만을 바랬다. 저 멀리서 함성 소리와 함께 햇빛 아래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햇빛에 눈이 부셔 가늘게 눈을 뜨고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니 왕실 앞에 펼쳐진 길 위로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국기를 흔들고 있었다. 군중들이 승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군대를 환영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울리는 경적 소리에 토르는 자신이 속한 군대가 크게 환대를 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생에 처음으로 이방아 라고 여겼던 스스로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저 경적소리, 널 위한 거야.” 토르 곁에서 말을 달리는 리스 왕자가 존경의 눈빛을 담아 토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이번 전쟁의 영웅이야. 이제 백성들의 영웅은 너야.” “생각해봐, 겨우 부대원일 뿐인 우리 중 한 사람이 맥클라우드 왕가의 모든 군대를 물리쳤잖아.” 오코너가 자랑스레 설명했다. “네가 부대원 전체에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일을 해 준거야.” 엘덴이 동조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우릴 좀 더 대단하게 여길 거야.” “네가 우리 모두를 구해준 건 말할 것도 없고.” 콘발이 덧붙였다. 토르는 으쓱한 마음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엔 혼란이 앞섰다. 토르는 자신이 다른 부대원들처럼 아직은 나약한 인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패배가 분명한 전쟁을 승리로 돌려놨다. “그냥 내가 훈련 받은 대로 했을 뿐인데.” 토르가 대답했다. “우리가 함께 받은 훈련들. 난 누구보다 뛰어나지 않아. 그냥 그날 행운이 따랐던 것뿐이야.” “행운 그 이상이었다고 말해야지.” 리스 왕자가 대답했다. 군대는 계속해서 왕실로 향하는 가장 큰 길을 따라 달렸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환호를 하며 거리 위로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의 손에는 왕실을 상징하는 맥길 왕가의 푸른 색과 노란 색의 현수막이 들려 있었다. 대단한 퍼레이드 행렬이었다. 왕실 전체와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고 그들의 표정엔 안도와 기쁨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토르는 그들의 표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맥클라우드 병사들이 이곳까지 접근했다면, 이 곳은 모두 황폐하게 무너져버렸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토르는 수천만 명의 병사들 속에서 엄청난 인파를 가르며 계속 말을 타고 나아갔다. 군대는 목조 다리를 건넜고 다리 위를 건너가는 말들의 우렁찬 말발굽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이후 군대는 아치형의 석조 출입구를 통과해 지하 통로를 지나 왕실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엄청난 군중들이 환호를 하며 군대를 반기고 있었다. 그들은 깃발을 흔들고 사탕을 던지며 군대를 환영했다. 때맞춰 악단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울리기 시작했고 심벌이 울리며 드럼이 박자에 맞춰 쿵쿵거렸다. 사람들은 이에 맞춰 흥겨운 춤을 췄다. 너무 많은 인파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자 토르는 다른 병사들처럼 말에서 내렸다. 말에서 내린 토르는 손을 뻗어 크론을 말에서 내려준 뒤 크론의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크론은 처음에는 절뚝거리더니 이내 걸음을 옮겼다. 걷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이에 토르는 한시름을 덜 수 있었다. 크론은 몸을 돌러 토르의 손바닥을 몇 번이나 핥아줬다. 군대는 왕실의 광장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알지도 못하는 군중들이 다가와 토르를 끌어안고 어깨를 두드렸다. “우릴 구해줬어!” 한 늙은 남자가 소리쳤다. “우리 왕국을 해방시켜줬어!” 토르는 뭐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수백, 수천만 명의 군중들이 일제히 환호하고 주변으로는 악단의 음악 소리가 크게 울리는 바람에 토르의 목소리가 묻혀 버렸다. 잠시 후 술통이 밖으로 옮겨졌고 사람들은 다 함께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웃었다. 그러나 토르의 마음속엔 오직 한 사람 생각뿐이었다. 그웬돌린 공주. 공주를 찾아야 했다. 토르는 군중 속에서 그웬 공주의 얼굴을 찾았다. 분명 이곳에 공주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공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토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네가 찾는 아가씨는 저쪽에 있는 거 같은데.” 리스 왕자가 반대쪽을 가리키며 토르에게 말했다. 리스 왕자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본 토르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곳에는 입가에 안도의 환한 미소를 짖고 토르를 향해 빠르게 걸어오는 그웬돌린 공주가 있었다. 공주는 밤새 잠을 설친 듯 보였다. 공주의 모습은 한층 더 아름다워 보였다. 공주는 서둘러 토르에게 다가와 토르의 품에 쏙 안겼다. 공주가 뛰어올라 양 팔로 토르를 끌어 안았고 토르도 그런 그녀를 꼭 껴안고 제자리에서 뱅뱅 돌았다. 토르에게 꼭 매달린 공주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토르의 목덜미가 젖었다. 토르는 자신을 향한 공주의 사랑과 공주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야, 무사히 돌아왔어.” 공주가 기쁨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주 생각밖에 없었어.” 토르가 공주를 꼭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공주를 품 안에 안은 이 순간 모든 것이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르는 천천히 공주를 안은 손을 놓았고 공주는 토르를 마주보고 고개를 올려 입을 맞췄다. 주변으로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두 사람을 지나가고 있었지만 공주와 토르는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입을 맞췄다. “그웬돌린 누나!” 리스 왕자가 기쁜 마음으로 공주를 불렀다. 공주는 몸을 돌려 리스 왕자를 꼭 끌어안았다. 마침 고드프리 왕자가 다가와 토르와 리스 왕자를 양 팔로 감싸 안았다. 가족의 재결합이 이뤄지는 순간이었고 이 순간 토르는 자신도 이들과 함께라는 소속감을 느꼈다. 마치 자신도 왕족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모두가 선대 맥길 왕을 향한 사랑과 개리스 왕에 대한 분노로 한마음을 나눈 사람들이었다. 크론이 이들 사이를 파고들어 그웬 공주에게 뛰어올랐다. 공주는 허리를 숙여 크론을 안아 올렸고 크론은 공주의 얼굴을 핥았다. “넌 볼 때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구나!” 공주가 크론의 빠른 성장에 감탄했다. “토르를 무사히 지켜준 데 대해 어떻게 보답을 해줄까?” 크론이 계속해서 공주에게 기어 올라갔다. 결국 공주는 웃음을 터트리며 크론을 쓰다듬었다. “어서 여길 벗어나자.” 공주가 곳곳에서 지나가는 인파에 부딪히며 토르에게 말했다. 공주는 손을 뻗어 토르의 손을 잡았다. 토르도 손을 내밀어 공주의 순을 잡고 공주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디선가 여러 명의 실버 전사들이 토르에게 다가와 뒤에서 토르를 들어 그들의 어깨 위에 올렸다. 토르가 공중으로 떠오르자 군중 속에서 커다란 환호가 일었다. “토르그린!” 군중들이 다 함께 외쳤다. 토르는 몇 번이고 빙빙 돌았다. 이내 토르의 손에 술잔이 쥐어졌고 토르는 고개를 들고 술잔을 비웠다. 군중들은 그런 토르의 모습 하나하나에 크게 열광했다. 털썩 주저앉은 토르는 사방에서 군중들이 모여들어 자신을 끌어안자,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웃었다. “우린 이제 축하연에 갈 거야.” 토르와 안면이 없던 실버 전사가 육중한 손으로 토르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전사들만을 위한 축하연이지. 진정한 남자를 위한. 너도 참석해야 해. 네 이름으로 예약된 좌석이 있을 거야. 그리고 너도, 또 너도.” 실버 전사는 리스 왕자와 오코너와 토르의 친구들을 바라보며 설명했다. “이제 너희들도 남자야. 그러니 우리의 축하연에 참석해야 해.” 실버 전사들이 토르와 부대원들을 이끌고 가자 군중들은 더욱 크게 환호했다. 토르는 겨우 빠져 나와 황급히 공주를 바라봤다. 공주를 또다시 혼자 두고 싶지 않은 마음에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저들과 함께 가.” 공주가 사심 없이 말했다. “참석하는 게 중요해. 부대원들과 축하연을 즐겨야지. 그들과 함께 승전을 축하해. 그게 실버 전사들의 전통이야. 절대 빠지면 안돼. 이따가 무기의 전당에서 만나자. 그럼 그때 함께 있을 수 있어.” 토르는 고개를 숙여 공주에게 입을 맞췄다. 할 수 있는 한 아주 오랫동안 공주를 안았지만 이내 부대원들이 토르에게 다가와 짓궂게 토르를 끌고 갔다. “사랑해.” 공주가 토르에게 말했다. “나도 사랑해.” 토르가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눈 앞에 자신을 향한 사랑을 가득 담은 아름다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공주를 바라보며 부대원들에게 끌려가는 토르의 마음 속에는 그 무엇보다 공주에게 청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공주를 영원히 곁에 두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청혼하기에 적절하지 않았다. 너무 일렀다. 토르는 애써 스스로를 다그쳤다. 어쩌면 오늘 밤도 너무 이를 수 있었다. 제 12장 개리스 왕은 침실에서 창 밖을 내다봤다. 새벽을 깨우는 이른 아침 햇살이 왕국을 비추며 수 많은 인파가 모여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속이 쓰렸다. 저 멀리 수평선으로 가장 원치 않았던 공포가 펼쳐지고 있었다. 다름아닌 군대의 복귀였다. 맥클라우드 군대를 물리친 기쁨에 젖어 승전 보를 울리며 행렬이 이어졌다. 캔드릭 왕자가 각각 자유를 얻고, 토르가 죽지 않고 영웅이 되어 돌아오는 군대의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개리스 왕은 미리 심어둔 첩자에게서 그간의 상황을 모두 보고 받았다. 토르가 매복을 당했지만 용케도 살아남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제 군대는 엄청난 힘을 자랑하며 다시 왕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개리스 왕의 계략은 모두 끔찍이도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 그의 속을 쓰리게 했다. 그는 왕국이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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